-
예수메시지 10 '차별하지 말고 사랑하라!'설교 2025. 3. 9. 10:32
예수메시지 10 / ‘차별하지 말고 사랑하라!’
로마서 10:8b~13
8 그러면 그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네게 가까이 있다.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9 입으로 예수는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10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릅니다. 11 성경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12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13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가운데 여러분의 삶도 풍요로운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요즘 우리는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혼란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 한복판에 개신교인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광화문과 여의도에서는 거리를 가득 채운 보수 개신교인들의 시국집회로 인해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사회를 통합시키고 치유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신앙인들이라도 저마다의 정치적 견해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교인들이 길거리로 나가서 정치적인 구호를 외칠 때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야 함을 말했습니다. 우리의 말과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전하는 아름다운 편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말과 삶이 그리스도의 편지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 길을 살아내려고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네게 가까이 있다.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이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성경말씀을 거룩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모세의 글을 읽을 때는 그들은 수건으로 가리고 읽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쉽게 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가까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입에 있고, 우리의 마음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고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하며, 이에 대해서 바울 사도는 “이것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우리가 삶 속에서 사람들에게 하는 말과 삶을 통해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 말합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말을 하며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아가고 어떻게 고백을 하느냐의 문제가 우리들의 구원과 깊은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이 일에 대해서 말씀을 깊이 생각하는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는 것은, 길거리에 나와서 정치적인 주장을 하는 이들의 언어가 거짓에 기반을 둔 것이며 혐오의 언어가라는 점에 있습니다. 특히 그들은 ‘한나라’ 사람에 대한 혐오를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그 ‘한나라’가 어떤 나라인줄 아시겠지만, 저는 ‘한나라’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저의 말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짐이 되길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사람들의 언어가 ‘혐오’의 언어로 바뀌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미국은 이제 다시 트럼프2기를 맞이하여 다시 ‘위대한 미국’을 외치기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위대한 미국을 만들자면서 그들이 하는 일들은 멕시코와의 국경을 더 높게 하고 외국인 체류자들을 추방하며 관세를 높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자국민들의 이익’에 최우선하는 정치를 펼치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모습들은 인류역사상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이니 그리 낮설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우리에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 확신의 근거는 바로 제가 어릴적부터 읽었던 성서에 기인합니다. 신명기 26장 이하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곳 저곳을 떠돌면서 가까스로 정착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성서는 그들이 정주하고 있는 땅을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시는 그 땅”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 수확을 거두게 되면 그 농산물의 첫 열매를 광주리에 담아서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으로 가지고 갈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고백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내 조상은 떠돌아다니면서 사는 아람 사람으로서 몇 안되는 사람을 거느리고 이집트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몸붙여 살면서, 거기에서 번성하여, 크고 강대한 민족이 되었는데, 이집트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괴롭게하며, 우리에게 강제노동을 시키므로, 우리가 주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우리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우리가 비참하게 사는 것과 고역에 시달리는 것과 억압에 짓눌려 있는 것을 보시고,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주께서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셔서,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그것을 주 너희의 하나님 앞에 놓고, 주 너희의 하나님께 경배드리고, 레위 사람과 너희 가운데서 사는 외국 사람과 함께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와 너희의 집안에 주신 온갖 좋은 것들을 누려라”
이 말은 간단하게 말하면 그렇습니다. 너희들이 지금은 이 좋은 땅에 거하면서 수확물을 얻고 안전하게 살아가지만 너희들의 조상들도 떠돌아다니면서 몸붙여 살아가던 이들이었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히브리민족이라는 말 자체가 “떠돌아다는 이들”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곳에 정착할 곳이 없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면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외국인노동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삶이 얼마나 고되었는지 그들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들의 수확한 것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고 그것을 레위인, 즉 목회자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나누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우리가 드리는 ‘십일조’의 시효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십일조를 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들에게 이 나라에 들어와서 몸붙여서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외국인들을 폄하하고 그들을 추방하려고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우리 스스로도 그렇게 떠돌아다니던 사람들이었음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이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사람들이 이렇게 갈수록 은총을 나누지 않고 혐오의 언어를 더 강화시키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에는 먹고 사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다른 이들과 나누지 않고 다 누려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사람들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그래서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받았던 것 하나가, 먹고 사는 것에 대한 시험이었겠습니까? 악마는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시던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인용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다’하였다”. 사람이 사는 것이 빵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겠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히려 사람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악마가 제시한 권세와 영광도 거절했습니다. 오로지 그분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는 트럼프와 세상의 지도자들이 제시하는 언어 가운데 악마가 예수님에게 했던 달콤한 속삭임이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지지하고 뽑아주고 경배를 하면 내가 너희들에게 빵과 권력과 영광을 주겠다”라는 말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으로 거절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은 오로지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 분만을 섬기는 일”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이 신명기를 보면 몸붙여 살고자 타국살이 삶을 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들과 나누는 일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단순하게 신을 경배하고 자신의 복을 비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임을 고백하고, 또한 자신들도 몸붙여 살곳이 없어서 떠돌아다녔던 이들임을 기억하고 지금 내 주위에서 그렇게 몸붙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면 차별하지 말고 사랑할 것을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오히려 자신의 신앙이 좋다고 자부하는 이들이 ‘혐오’와 ‘차별’을 이야기 하고 있으니 우리는 지금 시대를 역행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역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말이 참으로 좋습니다. 이 시대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것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일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부끄러움 가운데 있는 이들을 빛으로 구원으로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는 일일 것입니다. 주님은 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단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너무도 놀라운 복음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의 사회 가운데 유대사람과 그리스 사람들의 갈등이 심각했습니다. 서로를 죽고 죽이는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유대사람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부하고 그리스도 사람들을 무시했지만, 바울 사도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유대사람과 그리스 사람의 차별이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요즘의 언어로 하자면 이렇습니다. “한국사람이나, 북한사람이나, 일본사람이나, 중국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십니다”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커피차를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수치로는 모르겠지만, 피부로는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방에 내려가보면 어렵고 힘든 일들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전부가 외국인 노동자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곳에 와서 일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그래야만 자신들의 자녀들과 가족들이 살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이 일을 해줌으로 인해서 우리 나라의 경제가 더 강해지는 것을 저는 알 수 있습니다. 한국사람들은 하려고 하지 않는 어려운 일을 그들이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미국이 진짜 ‘위대한 나라’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보다 더 가난했지만 모든 외국인노동자들을 수용했습니다. 모든 난민들을 수용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양한 인종들을 통해서 그들은 ‘위대한 문화’와 ‘위대한 나라’를 만들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미국이 그렇게 위대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옹색해 보일 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차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참포도나무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사순절 첫번째 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말과 생각 그리고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만이 아니라, ‘너’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누구든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손이 짧으셔서 구원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나와 다른 그들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하되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만을 사랑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은 잘 알지 못하는 그들도 사랑하려고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우리는 차별의 언어만큼은 거두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 가운데 서기를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차별이 없으신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들의 삶에 함께 하시길 두손모아 기도합니다. 아멘.'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귀 위에 계신 하나님 (0) 2025.04.13 향유, 그리고 그 방 가득 찼던 것 (0) 2025.04.06 예수메시지2 세례와 회개 (0) 2025.01.12 예수메시지 1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여라' (1) 2025.01.05 2024년 송구영신 예배 설교 /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사야 60:1~3) (1) 2024.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