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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메시지2 세례와 회개설교 2025. 1. 12. 10:32
‘예수메시지 2 세례와 회개’
마가복음 1: 5~8
“그래서 온 유대 지방 사람들과 온 예루살렘 주민들이 그에게로 나아가서,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요한은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 그는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이가 내 뒤에 오십니다. 나는 몸을 굽혀서 그의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그 은총을 나와 더불어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나눌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제가 어릴 적에 즐겨 불렀던 찬양 가운데 불렀던 노래 가운데 ‘작은 불꽃 하나가’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어, 곧 주위 사람들 그 불에 몸녹이듯이 주님의 사랑 이 같이 한번 경험하면 그의 사랑 모두에게 전하고 싶으리”. 이절은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새싹이 돋아나면 새들은 지저귀고 꽃들은 피어나 화창한 봄날이라네 주님의 사랑 놀라와 한번 경험하면 좀과 같은 새 희망을 전하고 싶으리” 저는 이 찬양이야 말로 기독교 복음이 가지고 있는 핵심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작은 불꽃’ 하나가 우리들의 삶 속에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것입니다. 박영선 목사님의 말씀 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신앙이 강하냐 약하냐라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신앙이 있던지 아니면 신앙이 없는 문제이지, 강하고 약함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이 말씀에 공감을 합니다. 신앙이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있느냐 아니면 없느냐의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이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작은 불꽃 하나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난 주부터 예수메시지란 타이틀을 가지고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독교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이 있지만, 그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첫 번째 관문은 바로 ‘믿음’의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믿음의 대상은 바로 ‘예수’에 대한 믿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좋아보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하자면, ‘예수메시지’는 예수님께서 하신 그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자 하는 시도인 것입니다. 저는 이런 시도들이 우리로 하여금 처음 신앙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성서본문에서는 세례요한의 세례사역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메시지와 사역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할 때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의 삶과 사역으로부터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아니 좀 더 나아가서 말하자면 그의 사역이 예수님의 사역과 메시지의 발원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가 서로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세례요한의 사역은 세례사역으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역을 키우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세례를 받는 것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90년도 초반에 군생활을 하면서 중대군종병으로 섬겼었는데, 저희 연대교회 목사님의 사무실에는 매 기수마다 세례를 받는 인원들의 숫자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세례를 적게 받으면 군종병들이 대책을 간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면 세례요한의 사역은 그 숫자가 중요한 것 같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준다고 그러더냐?”라고 되받치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보면, 그의 사역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는 세례 그 자체에 마음을 다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례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그것은 죽음과 새로운 삶의 시작을 말합니다. 이전의 생활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서 살겠다는 고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세상에 대해서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해서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갈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세례라고 한다면, 세례요한의 세례는 조금은 다른 세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자면, 바로 ‘회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가 사역하던 곳에는 온 유대와 지방 사람들 그리고 온 예루살렘의 주민들이 그에게로 나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먼저 회개라는 것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너무 개인적인 부분으로만 국한 시키는 것은 문제일 것입니다. 마태복음 3장을 보면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데, 그는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닥쳐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라고 꾸짖었습니다. 그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을 거절한 것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태도에 뭔가가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스스로 경건하게 생각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관심이 많았습니다. 신앙적인 열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영적인 일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이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왜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인들에 대해서 반대를 했던 것일까요?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세례를 받는 것, 세례의 자리의 나오는 것은 단순한 기독교인이 된다는 선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까지의 삶과의 단절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 세상이 주는 것들에 머물지 않겠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의 삶에 대해서는 죽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속에서 머물면서 살겠다는 고백과 결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를 이야기 할 때 우리는 회개에 대해서 깊이 고민을 해야 하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의 영역 속에서 구체적인 변화들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으라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은 삶의 열매를 말할 것입니다. 삶의 모습이 세상의 사람과는 달라야 함을 말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을 구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열매가 열리는 삶을 살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의로운 열매, 용서의 열매, 성실의 열매, 기쁨의 열매, 그리고 감사의 열매가 맺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다!”라고 이야기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들은 과연 어떤 가치가 있기에 그토록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겁니까?”라는 말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만 저는 복음이 전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태복음에는 회개와 함께 임박한 심판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서, 불 속에 던져 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신 분이다. 나는 그의 신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심판이 아니라, 용서와 구원하심임을 믿습니다. 그분은 우리와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을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그분이 이끄시는 삶을 위해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오늘 한국교회가 맺어야 할 열매는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교인이 얼마나 많이 오고, 교회 재정이 얼마나 되고, 교회 건물이 얼마나 큰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교회는 회사가 아니며 교회는 경쟁의 상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교회는 하나님을 믿고자 나온 사람들의 거룩한 모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거친 옷과 거친 음식을 먹으면서 지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이가 내 뒤에 오십니다. 나는 몸을 굽혀서 그의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삶과 영성을 우리가 알 수 있는 모습일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다함께 그분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시간들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올해가 시작하면서 저는 일산과 무안을 오가고 있습니다. 그분의 부르심에 순종을 하면서 제가 살아내야 할 삶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고단한 삶이고 슬픈 삶이며 아픈 여정입니다. 그래도 그 아픈 여정을 통해서 아픈 이들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주님의 부르심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이 여정들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앞에 거룩한 여정을 걷게 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아멘.
https://www.youtube.com/live/oSR1wHpUhCE?si=ndwPCFnQaCuZdIz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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