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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새해설교 '함께 가자, 천천히' (마태 4:19)
    설교 2017. 12. 31. 19:21

    함께 가자, 천천히’ (마태 4:19)

     

    마태복음 4:12~20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다고 하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돌아가셨다. 13 그리고 그는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 바닷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다. 14 이것은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었다. 15 "스불론과 납달리 땅, 요단 강 건너편, 바다로 가는 길목, 이방 사람들의 갈릴리, 16 어둠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그늘진 죽음의 땅에 앉은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었다." 17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18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걸어가시다가, 두 형제,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와 형제간인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나는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 20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오늘 우리는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시작하는 시간에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시간의 분류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구분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이순간은 그 어느 순간보다 더 진한 질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바로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순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교회는 매해마다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 해의 마무리와 시작을 찬양과 기도 그리고 말씀가운데 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실존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하고 말씀 안에서 마치게 됨을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믿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믿음으로 시작하는 저와 여러분의 한 해가 복된 한 해가 되리라 믿습니다.

     

    저는 2018년 교회표어를 함께 가자, 천천히라고 정했습니다. 표어만 그렇게 잡는 것이 아니라, 목회의 모든 방향을 이 표어에 맞추려고 합니다. 교회는 그동안 2004년 개척한 이후로 목회자 가정과 장인 장모가 되는 노창복 이숙희 권사님 그리고 인천에서 매주 오시는 장로님, 권사님들의 헌신을 중심으로 선교를 감당했습니다. 물론 함께 한 사람들의 참여와 헌신이 있었지만, 개척자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 교회는 이 자리까지 오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자리를 빌어서 변함없는 헌신과 사랑을 보여주신 장로님, 권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동안 참포도나무교회는 작지만 의미 있는 선교의 결실들을 맺었습니다. 마을에 들어와서 마을 아이들과 함께 일구었던 1시간학교는 1기와 2기 그리고 그 부모들이 함께 하는 교육공동체의 모습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2010년에 문을 열은 커피마을은 동네 사랑방의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습니다. 그 해에 시작한 마을콘서트도 회를 거듭하면서 더 알찬 무대로 마을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마을공작소가 생겨서 두 명의 청년들이 그곳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일구어나가고 있습니다. 마을공작소를 통해서 저는 목수의 일도 더불어 하게 되었고 그 일을 계기로 감신대에 선교와 목공’, ‘농촌선교’, ‘노작교육들의 수업들이 생겨서 노동을 하면서 기도하고 신학하며 선교의 장을 모색하는 새로운 신학교육의 장을 열게 되었습니다. 2017년도는 연세대학교 삼애캠퍼스에도 목공수업이 열리게 되었고, 마을공작소 옆 공간을 임대하여 길목공소를 꾸미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길목공소를 통하여 목사님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목공을 배우며 기도하고 함께 미래를 꿈꾸는 목공학교로 성장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계획은 인간이 세우지만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신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부지런히 걷다 보니, 저 혼자 너무 앞에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주신 소명이라고 고백하며 제 삶을 헌신하며 하루 하루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어느덧 홀로 외롭게 걷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 시기부터 지쳐 있는 교우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교우들은 저마다의 삶의 문제로 인해서 고통 받고 아파하는데 저만 앞만 바라보고 앞질러서 간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모든 일들을 교우들과 함께 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감당해야 할 십자가를 당신이 지셨지만, 제자들을 모으고 제자들과 모든 일을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시면서도 이제 너희들이 나보다 더 큰 일들도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일들을 믿음으로 감당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3년간의 짧지 않은 시간을 예수님과 함께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함께하는 것은 이토록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저는 교회 아이들과 함께 부산까지 걸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부산으로 목적지를 설정한 것에는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이유가 있다면 아이들과 함께 걸어서 갈 수 있는 제일 먼 곳이 부산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 목적은 부산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걷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의 삶에 제일 갚진 기억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사실 단순히 걷는 행위 자체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신앙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는 성경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할 당시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 바닷가에 잇는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다고 말씀합니다. 가버나움으로 가서 그들과 함께 사셨던 이유는 바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선포된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셨습니다.

     

    그 말씀은 이렇습니다. "스불론과 납달리 땅, 요단 강 건너편, 바다로 가는 길목, 이방 사람들의 갈릴리, 16 어둠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그늘진 죽음의 땅에 앉은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었다."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수님께서 하실 일들을 미리 예언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으로 실현되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삶을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에 실현하는 삶입니다. 그저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 빛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둠에 앉아 있는 백성들, 죽음의 땅에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는 것이 바로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은 종교와 정치, 교육의 본고장이었습니다. 그 곳에는 권력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주류사회를 형성하고 있던 예루살렘에서 사역을 하시지 않고 스블론과 납달리 땅으로 들어가셔서 그곳에서 사셨습니다. 그곳에는 당시에는 거리낌의 대상이었던 어부들이 많이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였고, 멸시의 대상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바로 그렇게 천하고 가난한 동네에 빛으로 오실 예수님을 예언하였고,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과 같이 그렇게 스블론과 납달리 땅에 빛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걸어가시다가 그 곳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어부 베드로와 안드레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나는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신앙의 목적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그 분이 하시는 일을 보고 그 분이 하시는 일에 증인이 되면 됩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그 분이 이 땅에서 이루시기를 원하는 일들을 하고자 노력하면 됩니다. 그 길이 바로 순례자의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따라가길 위해서 나선 길이 생각해 보니, 저 혼자만 서둘러서 가는 길이 된 것은 아닌지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함께 가자란 고백 뒤에, “천천히란 부사를 붙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너무 서둘러서 가다 보니 걸음걸이가 늦은 사람들은 뒤로 처지게 된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함께 가는 것, 함께 걷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더 이상 아쉬울 것이 없는 충만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모르게 서두르게 되고, 재촉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부터 우리 교회 꼬마 아이들도 따라올 수 있는 느리고 느린 발걸음으로 주님의 길을 걸으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둘러야 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지만 천천히걷자는 것은 주님을 따르는 우리의 마음을 소홀하게 하자는 제안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의 신앙이 느리지만 더 바른 길, 옳은 길을 걷자는 제안입니다. 서둘러 가다 보면 우리가 놓치고 지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지 말고 오히려 느리게 걷더라도 우리가 보아야 할 풍경들에 시선을 주고, 우리가 들어야 할 소리에 귀 기울이고, 우리가 손잡아주어야 할 사람들의 손을 놓치지 말고 걷자는 뜻입니다.

     

    얼마 전 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것은 나중에 모든 수업이 끝난 뒤에 그 때 더 잘해줄걸이라고 말하면서 후회하기 싫어서야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 마음이 천천히 걷는 마음이라고 믿습니다. 모든 일들은 지나고 맙니다. 우리가 나눈 아름다운 기억들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잊혀지겠지요. 그 때 더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길떠난 삶을 살아가는 순례자가 된 저와 여러분의 여정이 그렇게 아름다운 함께 천천히 걷는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 새로이 시작되는 2018년 새해, 여러분과 함께 그렇게 걷겠습니다.

    함께 가자, 천천히

    2018년 새해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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