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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 마음과 온 정신으로 사랑하라!
    설교 2024. 11. 3. 10:35

    온 마음과 온 정신으로 사랑하라!

    마가복음 12:28~34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그 은총이 날마다 배가 되어서 그것을 남들과도 나누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따지고 파고들어 여쭙는 사람

     

    오늘 우리가 읽은 성서본문에서는 다시 율법학자들이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여행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마을 저 마을을 순례하시고 그 가운데 제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또 지켜본 사람들도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배를 빌려서 예수님을 따라다니기도 했으니 말하자면 예수팬덤이 형성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팬덤에 빠지지 않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예수님과 제일 많은 토론을 했던 율법학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바리새파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스스로를 구별된 사람들’, ‘거룩한 사람들로 불렀습니다. 제가 조금 전에 토론이라고 말했는데 사실 그들은 토론이 아니라 변론을 즐겼습니다. 사실 그들이 이렇게 예수님께 나와서 변론을 하고자 했던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적인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하나 되지 않고 변두리를 맴돌 뿐이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심판하고 십자가에 세우는 일에 앞장을 서고 말았습니다.

     

    으뜸가는 계명이 무엇입니까?

     

    율법학자들은 길에서 실랑이가 벌어진 틈새로 파고들어서 예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들은 모든 계명 가운데 으뜸 가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라고 물어봤습니다. 그들은 말하자면 법률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법전을 대하듯이 다루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법조항을 어기는 사람들이 있으면 비난하고 때론 심판하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니 사실 이렇게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공공연하게 묻는 것은 토론을 넘어서는 것임을 우리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예수님을 곤란하게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정답을 맞추지 못한다면 그 일로 인해서 거꾸로 예수를 가르치거나 아니면 그 세력을 약화시키는 모멘텀으로 만들어 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그들이 예수님에게 물어본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단순하지만은 않습니다. 구약의 거의 모든 율법에 통달하지 않고서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물어보면 당황스러워할 것입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정답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들이 물어본 대답에 답하시기 전에 그들이 따라야 할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믿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다른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진리가 서로의 의견의 차로 인해서 나뉘지 않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진리가 있고, 저기서의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심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율법이 가리키는 곳이 바로 사랑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율법은 곧 한 분 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에게 으뜸가는 계명에 대해서 물어보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 질문을 둘로 나눠서 대답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으뜸가는 계명을 말씀하신 뒤 바로 다시 버금가는 계명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이 사실상 하나님과의 관계만을 말하지 않고 그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웃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규정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 관계를 놓치지 않고 말씀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 나라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군요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옳은 말씀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문제를 냈는데 정답을 맞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반복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더 나아가서 번제물을 다 태우는 것과 희생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대답을 듣고는 예수님은 당신은 하나님 나라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군요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더는 예수님에게 따지고 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과 삶이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 나라와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깝기는 하지만 간극이 있다는 것입니다.

     

    들으라 이스라엘!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이 말씀 가운데 예수님이 그들에게 하셨던 말씀에 귀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낸 문제에 대한 답안으로만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자신들의 입장에서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나머지는 듣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사실 그들의 삶이 하나님 나라의 삶의 법칙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저는 목수로 일하기 때문에 가끔 전기 연결작업을 하는데, 전선 한 쪽이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삶의 법칙과 가깝기는 하지만, 전선이 떨어져서 작동하지 않는 불꺼진 전등과 같은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을 예수님은 들으라 이스라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대화를 하고 있지만, 예수님으로부터 배울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으뜸되는 계명을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들을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 말씀을 듣고 준행하면 되는데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만한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말씀을 해도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지행합일

     

    예수님은 으뜸가는 계명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율법과 신앙의 핵심은 바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자에 대한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한분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과 함께 더불어가는 이웃들을 사랑하는 것이 신앙의 전부인 것입니다. 그 틀을 따르고 준행하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붙어야 하는 부사절이 있습니다. 주님은 온 마음과 온 정성과 온 정신과 온 힘으로사랑하라는 부사절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저 공식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마음과 정성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할 수 있으면 하고, 할 수 없으면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삶으로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삶으로 결단을 하고 그 삶을 이루기 위해서 희생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대답 가운데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계명, 곧 지식과 학문이 이론적인 것에만 머물러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대답을 할 때 번제물과 희생제물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사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다는 결단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을 당신께 드립니다.

     

    이장희씨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나 그대에게 드릴 말 있네 오늘 밤 문득 드릴 말 있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 내 사랑을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할게 없네 별을 따다가 그대 두손에 가득 드리리사실 이 가사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별을 따다가 그대 두 손에 가득 드린다고 하는데, 우리는 별에 다가서기 전에 늙어서 죽고 말 것입니다.

     

    그래도 이 노래가 전하는 정서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자신이 모든 것을 하겠고 그것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그런 마음 다짐이 있습니다. 사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저는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합리적이지도 않고 학술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는 일상의 삶 가운데서 수많은 눈물과 헌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서 오히려 억울함을 당하기도 하고, 평생 그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다가 몸에 병을 얻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은 결단이다.

     

    룻기에는 나오미와 며느리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나오미와 두 며느리들은 삶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들의 남자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경제적기반과 안전을 잃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룻은 합리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고 나오미와 함께 이스라엘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나오미가 섬기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갈 것을 결단합니다. 그 결단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바보같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 결단으로 인해서 룻은 삶의 구원을 받게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누군가는 온 존재를 다하여 사랑하고 계십니까?

     

    사랑하는 참포도나무교회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의 삶이 이렇게 사랑을 위해서 결단하는 신앙인들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자기자신과 같이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우리는 선택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삶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마음과 모든 정신과 모든 정성과 모든 힘을 다하여 그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들이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https://www.youtube.com/live/gHMGPGI798g?si=fDjQfePNJ1Ynmo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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