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용기내어 일어서라. 그분이 너를 부르신다
    설교 2024. 10. 27. 10:37

    용기내어 일어서라. 그분이 너를 부르신다

    마가복음 10:46~52

     

    주님의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사실 주님의 은총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떠나신 적이 없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사람은 그 은총을 누리는 삶을 살고 있지만,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은총과는 상관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믿음이기에?

     

    오늘 우리가 읽은 성서 본문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리고를 들렀다가 다시 길을 떠나셨습니다. 그 길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바르티매오라는 한 소경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사렛 예수라는 소리를 듣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에게 구조요청을 한 것입니다. 성서는 그를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이고 그가 앞 못 보는 거지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의 처지가 난감하기 짝이 없습니다. 소경인데 누군가 도와줄 이가 한명도 없는 불쌍한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만나서 그의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그 길에서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도 모두 저마다의 소원들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 그 자리에서 예수님으로 인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받은 사람은 바르티매오 한 사람이었고, 예수님은 그에게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이셨기에 그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은 맞지만, 예수님은 굳이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바르티매오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의 믿음에는 어떤 요소들이 있었는지 우리는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들음에서 시작하다

     

    그의 믿음의 시작은 바로 듣기였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는 어떠한 희망도 있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소경이었고, 그는 거지였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티매오라고 말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어찌된 일인지, 그의 곁에 있지 않습니다. 아마 그는 고아였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그의 아버지가 엄연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지로 지냈다면 그는 부모에게도 버림을 받은 불쌍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어디에서도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가운데서 한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 소리는 바로 나자렛 예수라는 소리였습니다. 그 한 소리를 듣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들음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를 멈추게 하다

     

    사실 그의 믿음이 들음에서부터 시작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로마서 1017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로마서 10:17). 믿음이 생기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전해야 하지만, 그 전한 말씀을 듣는 사람의 귀로부터 믿음이 생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군가의 말을 유심히 듣는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는 앞을 볼 수 없는 소경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더 귀를 기울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 사람 마음 속에 깊은 확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확신이 바로 그의 믿음이었을 것인데, “나자렛 예수를 만나면 나의 문제가 해결될 거야라는 믿음이 자리 잡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께서 자신의 앞을 지나갈 때 그 절체절명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붙잡았습니다.

     

    그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지만, 그는 다시 한번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그의 소리로 인해서 예수님의 걸음을 멈추게 했던 것입니다. 그의 믿음에는 길을 가던 예수를 멈추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

     

    또한 그는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에게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거듭 외칠 수 있었던 용기는 바로 그 사람 가운데 가지고 있었던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삶의 문제를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를 따라나선 사람 가운데 가장 작고 연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렀을 때 다른 이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던 것이지요. 그래도 그는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그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말 가운데, ‘중꺽마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꺽이지 않는 마음이란 뜻입니다. 바르티매오에게는 중꺽마가 있었습니다.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예수에게 외쳤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바꾸고자 한 현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께서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을 때, “선생님, 제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라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길거리에서 일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제 삶을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모두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바라는 것이 분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렇게 그들과 함께 진짜로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커피마을이라고 생각합니다. 커피로 마을을 만들고 그 커피로 인해서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저는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도와 줄래야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용기내어, 일어서라! 그분이 너를 부르신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이 복음서에서 읽어내야 할 본문이 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본문에서 예수님과 바르티메오는 나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정확하게 둘로 나뉘었습니다. 한 부류는 바르티메오에게 가만히 있어라! 조용히 하라!고 윽박질렀습니다. 그들은 바르티메오의 목소리를 꺽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들은 바르티메오의 목소리를 조용하게 하는데 실패를 했습니다. 이 기적의 사건에서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바르티메오를 격려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를 불러 오너라라고 말을 할 때에 그 말씀에 순종을 하고 소경 바르티메오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용기를 내어 일어서라. 그분이 너를 부르신다라고 격려를 했습니다. 그들은 바르티메오가 예수께 나오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바르티메오를 격려하여 용기를 북돋우고 있습니다. 저는 바르티메오와 같은 젊은이들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이렇게 격려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도 그런 사람의 하나가 되고자 합니다.

     

    큰 무리를 이루어 돌아오리라

     

    그런데 바르티메오가 눈을 뜨게 된 놀라운 사건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예레미야의 예언이 성취되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예레미야 31장에 보면 예레미야는 야훼의 예언을 기록했습니다. 야훼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하실 때 이스라엘의 남은 백성을 구해 주실 것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백성 가운데는 소경, 절름발이, 아기 가진 여자, 아기 없은 여자도 섞어서 무리를 이루어 돌아올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은 함께 돌아올 수 있는 힘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도 모두 함께 힘을 얻어서 돌아오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예수님께서 예리고를 떠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그 구원의 행렬이 함께 해야 할 사람은 바로 소경 바르티메오도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아마도 이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영구한 사제이신 예수

     

    오늘 우리가 읽었던 제2독서 히브리서는 또 다른 정보를 우리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속죄제물로 바치셨다고 말합니다. 단 한번의 제물이 되심으로 모든 이들을 구원하시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매번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한번의 희생으로서 당신께 나오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중재자가 되어 주심을 말합니다. “당신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해 주실 수 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르티메오는 바로 그분이 예수님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었고, 그는 그래서 땅에 주저 않아서 지내야 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을 여간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귀로 나자렛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들음을 통해서 믿음이 자라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그는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나자넷 예수님이시라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그런 믿음은 그로 말미암아 외치게 하였고 또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을 때에 그는 고침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라는 말씀이 옳은 말씀인 것입니다.

     

    가라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여기에서 성서 읽기를 멈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적을 체험한 바르티메오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을 성서는 가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체험한 바르티메오에게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던 바를 이루었습니다.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이루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다시 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던 것을 이루었을 때가 가장 위태로운 순간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룬 그 순간이 위기의 순간이 된 것을 우리는 보고 또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가야 할 길은 어디였을까요? 주님께서 그에게 어디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그런데 주님은 모세에게도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요나에게도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도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르티메오가 가야 했던 길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그것은 눈을 뜨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신앙이 좋다라는 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눈이 밝아졌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이전에는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르티메오는 예수를 만난 뒤에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보지 못하던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보게 하신 세상을 주님의 사랑으로 다시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신앙이란 눈을 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눈을 뜨고 있지만, 사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바르티메오처럼 눈이 멀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한다면 말이지요. 오늘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만나서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된 바르티메오처럼 눈이 떠서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https://www.youtube.com/watch?v=80OLGxbs780

     

    #바르티매오 #참포도나무교회 #노동묵상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3) 2024.12.01
    온 마음과 온 정신으로 사랑하라!  (1) 2024.11.03
    특권과 섬김  (6) 2024.10.20
    어려운 길, 쉬운 길  (3) 2024.10.13
    물 한 잔의 지지  (1) 2024.09.29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