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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희는 너희를 누구라고 하느냐?
    설교 2026. 8. 23. 10:32

    너희는 너희를 누구라고 하느냐?

    마태복음 16:13–20

    오늘은 제가 다른 분에게 들은 이야기로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어느 주일 아침, 어머니가 아들을 깨우며 말했습니다. “어서 일어나서 교회 갈 준비를 해야지.” 아들은 이불 속에서 오늘은 교회에 가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아들이 말했습니다.

    “첫째, 교회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요. 둘째, 나도 그 사람들이 싫어요.”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나도 네가 교회에 가야 하는 두 가지 이유를 말해 주마. 첫째, 너는 이제 마흔다섯 살이나 되었고, 둘째…… 네가 그 교회 목사잖아.”

    이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한 가지 중요한 면을 보게 됩니다. 어머니는 그 사람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를 말한 것이 아니라 그가 누구인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면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누구인지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내가 선택하는 삶의 방향도 달라집니다.

    오늘 마태복음에도 바로 이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으십니다.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고 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한다고 대답합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결코 평범한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엘리야와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기억 속에서 쉽게 견줄 수 없는 위대한 예언자들입니다. 상당히 높은 평가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들의 대답이 모두 자신들이 알고 있는 가장 위대한 사람의 이름 안에 머물러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이제 질문을 제자들에게 돌리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 질문을 읽으면서 저는 바로 앞장에서 만났던 가나안 여인이 떠올랐습니다. 제자도 아니고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었던 그 여인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이라고 불렀고, 예수님께서는 “여자여, 참으로 네 믿음이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멀리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오히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본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는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걸어온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저는 베드로의 대답만큼이나 그다음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며 “당신은 이런 분입니다”라고 고백하자,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바라보며 말씀하십니다.

    “너는 베드로다.”

    참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가 드러나고, 동시에 베드로가 누구인지도 드러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베드로가 누구인지를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그가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가게 될지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저는 오늘 설교의 제목에 대한 대답을 발견합니다.

    “너희는 너희를 누구라고 하느냐?”

    우리는 이 질문을 들으면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보다 먼저 다른 곳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누구라고 부르고 계시는가?”

    베드로의 정체성은 자기 자신에게 붙인 이름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바라보며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다.”

    마태복음을 연구한 데이비스와 앨리슨은 이 본문의 ‘반석’을 베드로 자신과 연결해서 읽는 것이 문맥상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베드로가 원래부터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어서 이런 이름을 얻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름과 역할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베드로의 이후를 알고 있기에 이 말씀이 더욱 놀랍게 들립니다.

    베드로는 곧 실패합니다. 예수님께서 고난받고 죽임을 당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립니다. 그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리스도가 어떤 길을 걸어가시는 분인지는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전까지 “너는 베드로다”라는 말씀을 들었던 사람이 곧바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책망을 듣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붙잡히시던 밤,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했던 베드로는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 베드로는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했을까요?

    마태복음을 연구한 울리히 루츠는 마태가 베드로를 이상적인 영웅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훌륭한 고백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의 흔들림과 실패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너는 베드로다”라는 말씀이 더 크게 들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앞으로 실패하지 않을 사람이기 때문에 그를 베드로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잘못 이해했고, 두려워했고, 결국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실패가 예수님께서 주신 이름보다 더 큰 말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성공으로만 설명되는 사람도 아니고 실패로만 설명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보다 먼저 주어진 말씀이 있었습니다.

    “너는 베드로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는 잘했을 때의 나와 실패했을 때의 나 사이를 오가며 살아갑니다. 일이 잘되면 내가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지다가도 한 번 크게 넘어지면 살아온 모든 것이 잘못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더 깊은 대답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가장 빛나는 순간만으로 우리 자신을 설명할 필요도 없고, 가장 부끄러운 실패를 우리의 마지막 이름으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가장 깊은 대답은 우리를 부르시는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부르심에는 정체성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베드로다”라고 말씀하신 뒤 곧바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시고 하늘 나라의 열쇠를 맡기십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 사람에게 이제 살아가야 할 길이 주어진 것입니다.

    처음 이야기 속 그 사람도 “네가 그 교회 목사잖아”라는 말을 듣자 어디로 가야 하는지가 분명해졌습니다. 그가 누구인지가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결정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셨던 사람을 사랑하고, 그분이 찾아가셨던 사람에게 찾아가며, 그분이 넘어가셨던 경계를 우리도 넘어가야 합니다.

    앞장의 가나안 여인을 생각하면 이것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예수님의 자비는 경계를 넘어 한 이방 여인과 그의 딸에게까지 흘러갔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교회 역시 자기 안에만 머물 수는 없습니다.

    오늘 함께 읽는 로마서 12장에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생각과 성격이 같아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향하시는 곳을 향해 살아갑니다.

    저는 이것이 교회의 선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알고 그 이름대로 살아가는 것, 그분이 사랑하시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 우리의 말과 삶을 통해 우리가 고백하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교회가 세상 속에 존재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우리 교회의 한 공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교회는 처음 장항동의 작은 공간에서 시작했다가 지금의 백석동 13블럭으로 옮겨왔습니다. 이후 장항동 공간은 다른 분들에게 임대했고, 그 임대수익을 통해 우리는 장학사업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 공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도 다른 방식으로 우리 교회의 선교에 한몫을 감당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9월이면 그곳이 비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그 공간을 놓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건물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시든지, 아니면 우리에게 계속 남겨 두신다면 이 공간에 새로운 선교적 기능을 부여해 주십시오.”

    지금까지는 임대수익으로 장학사업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어쩌면 그 공간 자체가 사람을 만나고 섬기는 곳이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그 모습이 어떠해야 할지는 저도 모릅니다.

    다만 그 공간은 우리 교회가 시작된 곳이고, 지금까지 그 공간을 통해 우리 공동체가 함께 선교해 왔으니 앞으로의 역할도 우리가 함께 묻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안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회라면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도 결국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돌려보고 싶습니다.

    만일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우리는 베드로처럼 대답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어쩌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정답을 말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답한다는 것은 그렇게 믿는다는 것이고, 그렇게 믿는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삶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는 것은 그분이 나의 삶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고백은 우리의 삶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가고 싶었던 길을 멈추게 하고, 만나고 싶지 않았던 사람에게 데려가며, 붙들고 있던 것을 다시 바라보게 할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지만 그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향해 가실 줄은 몰랐고, 자신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길을 걷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대답하고 나면 이번에는 우리 자신을 향한 질문을 듣게 됩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누구냐?”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다”라고 말씀하셨던 주님 앞에서 우리도 우리가 누구인지를 다시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베드로처럼 제대로 고백하고도 실패할 수 있고, 두려워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우리의 삶으로 우리가 했던 고백을 부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갈 수 있고, 다시 고백할 수 있으며, 다시 그분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교회를 세우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얼마나 잘했는지, 얼마나 성공했는지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속해 있으며 누구의 부르심을 따라 살아가는가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결국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우리의 시간도, 재능도, 공간도, 남은 삶도 그분이 사랑하시는 세상을 향해 열려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말뿐 아니라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물으신다면, 우리 모두 이렇게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며, 세상을 향해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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