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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주님
    설교 2025. 9. 14. 03:43

    제목: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주님
    본문: 누가복음 15:1–10

    1. 무언가를 잃어버리다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은총을 일상의 삶 가운데서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적이 있으신지요? 잃어버린 것을 찾는라고 한참을 헤맨적이 있으신지요? 저는 물건을 자주 잃어버립니다. 제가 하는 일이 많고 다양하다보니 물건을 아주 다양하게 잃어버리고 또 물건을 찾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할 때가 있습니다. 저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도 중요한 업무중의 하나가 제가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일이 되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대부분 며칠 안에 찾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살아가면서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것들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때론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하도, 또 관계를 잃기도 하고 때론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심각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 믿음을 잃어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2. 잃어버린 사람들 (ἀπολωλός)

    오늘 본문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께 몰려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은 곧장 수군거립니다. “이 사람은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 우리가 성서를 읽다 보면, 언제나 두 무리를 만나게 됩니다. 한쪽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있고, 다른 쪽에는 줄곧 예수님과 척을 지고 대립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놀랍게도 불신자들이 아니라, 스스로 신앙이 좋다고 자부하던 바로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을 향해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문자와 규칙을 섬기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들의 법전에는 “이방인, 곧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과는 교제하지 말라”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누구와 먹을 수 있는가, 누구와 함께 할 수 있는가’가 곧 거룩과 불결을 가르는 경계였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앉아 음식을 나누신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에게 관심이 있었지만, 죄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태도는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해서 몰려다니면서 수군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는 달랐습니다.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의 눈에는 ‘부정한 자, 죄인, 배제되어야 할 자’로 보였던 이들이, 예수님의 눈에는 “잃어버린 자”(ἀπολωλός)로 보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비슷한 용어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드라크마, 잃어버린 아들 모두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 주님은 아흔아홉마리를 내버려 두고 잃어버린 양 한마디를 찾기 위해서 길떠난 목자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성서가 얼마나 잃어버린 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3. 찾아나선 목자(ζητέω)

    그러나 주님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몸을 일으켜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나서고 계십니다. 양을 치는 목자는 아흔아홉마리 양을 내버려 두고, 길을 잃은 한 마리 양을 길을 나섭니다. 우리가 흔하게 이야기 하는 ‘선한목자’이미지는 그저 평범하게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잘 지내는 양들을 지키는 목자가 아니라,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길을 떠나는 목자를 말합니다.

    드라크마 비유에서도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여인은 등불을 켜고, 온 집안을 샅샅이 뒤집어서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습니다. 언제까지 찾습니까? 잃어버린 것을 찾을 때까지 찾는다고 말합니다. 이 여인의 모습과 선한목자되신 우리 주님의 이미지가 오버랩되면서 우리 주님의 마음이 어떤지를 성서는 우리들에게 비춰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분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려고 길을 떠나고 또한 샅샅이 뒤져서 찾으시는 분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끝까지 찾으십니다.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포기한 자리에서, 우리가 체념한 그곳에서조차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찾으십니다.

    4. 발견하는 기쁨! (εὑρίσκω / χαίρω)

    그리고 이제 성서는 발견의 순간으로 나아갑니다. 잃었던 양을 찾으러 길을 떠났던 목자는 잃었던 양을 찾아서 어깨에 메고 돌아옵니다. 잃어버렸던 드라크마를 찾던 여인은 동전을 손에 쥐고 벗들을 부릅니다. 그런데 성서는 이 찾음, 곧 발견하는 것이 구원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은 목자는 그 양을 자신의 어깨에 메고 돌아옵니다. 그 모습에는 다시는 그 양을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목자의 마음이 보입니다. 그리고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은 친구들을 불러서 기쁨의 잔치를 벌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이유도 이 비유로 설명이 됩니다. 예수님은 잃었던 사람들을 다시 찾았으니, 이제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기쁨을 나누며 잔치를 벌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잃었던 양을 찾은 목자도 사람들을 초대해서 잔치를 벌였던 것이고, 드라크마 하나를 되찾은 여인도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서 잔치를 벌인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는 우리 기독교가 말하는 기쁨의 삶, 구원의 삶이 잘 그려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구원을 얻는 것을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단순화 해서 말합니다. 물론 그 부분에 대해서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하자면 구원은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금 되찾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찾았을 때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 기쁨을 매일 매일 누리면서 살아가는 삶이 바로 구원받은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진짜로 잃어버린 사람들!

     

    그런데 바리새파 사람들와 율법학자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스스로 옳은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은총의 자리에 서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예수님에 대해서도 수군거리고 정죄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삶에는 수군거림밖에는 없었습니다. 어디에도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을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자부했지만 사실 진짜 잃어버린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바로 저들이었습니다. 저들의 마음은 냉냉해졌고, 저들의 관계는 단절되었고 저들의 삶에는 어떠한 감사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사실 진짜로 잃어버린 자들은 바로 저들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심각한 이유는 바로 기독교에서 구원은 기쁨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무언가를 소유한 것에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바로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가운데 발견하는 기쁨임을 성서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어제 일산 미관광장에서 열린 장애인 단체의 잔치 자리에 있었습니다. 저를 부른 이유는 커피를 팔아 달라는 것이었지만, 사실 그날 저는 몇 잔 팔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어떤 큰 축제보다 더 기뻤습니다. 저는 이날 이들과 함께 커피차로 함께 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일상의 삶이 고단한 이들과 함께 잠시동안 같이 하는 것 만으로도 저에게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는 우리 기독교의 한계를 또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옆에 큰 교회에서는 행사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때까지 교회 앞에 텐트를 치고 찬송을 부르고 전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냉냉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 한 명도 장애인 단체에서 벌인 잔치에 오는 이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전도를 멈추고 장애인 단체의 벌인 잔치에 함께 했다면, 교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잃어버린 양을 되찾은 목자처럼 춤을 추면서 함께 기뻐했을 것입니다.

     

    이 행사가운데 인상깊은 순간이 있었습니다. 한 청년이 저희 커피차에 와서 퉁명스럽게 아이스아메리카노 두잔을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커피를 다 마신 뒤에 무대에 올라가서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그 노래를 제가 한번 불러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노래일 겁니다. 아시는 분은 함께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 여기 있어줘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나눠먹을 밥을 지을 수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 그대의 저린 손을 잡아 줄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되지 않는 위로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거친 바람속에도 젖은 지붕 밑에도

    홀로 내팽개쳐져 있지 않다는게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라는 놀라운 사람 때문이라는 거

     

    아마도 이 노래는 자신의 일상을 버텨준 이들을 위해서 부른 노래일 것입니다. 그의 고단한 삶에 함께 동행한 엄마와 아빠, 그리고 동료와 친구들을 위한 감사의 노래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저는 이런 일들을 해야 하는 곳이 바로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되지 않는 위로라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여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저린 손을 잡아주는 곳이 바로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이 시대에도 잃어버린 자들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6. 드라크마 한 개의 신비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들의 삶의 구원은 어떻게 일상의 삶이 될 수 있을까요? 잃어버린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다시 구원의 기쁨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오늘 성서가 말하는 바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성서는 바로 드라크마 한개에 해답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서는 아흔아홉마리를 구원할 것을 우리들에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성서는 또한 우리들에게 이미 가지고 있는 아홉개의 드라크마에 대하여 말하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감사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기쁨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바로 잃어버렸던 양 한 마리를 다시 찾을 때입니다. 바로 잃어버렸던 하나의 드라크마를 다시 찾을 때입니다.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되찾는 것은 끊어졌던 관계가 다시금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창조로 인해서 시작되었던 그 아름다운 관계를 회복하게 되는 것, 그 은총의 신비 안으로 복권되는 것이 바로 구원의 기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은총을 매일 매일 누리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드라크마는 하루치의 일당이라는 것을 아시는지요? 그러니 드라크마 한개를 찾았다는 것은 잃어버렸던 하루를 찾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우찌무라간조의 일일일생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이루려는 습성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신비는 바로 드라크마 하나와 같은 하루 하루를 기쁨으로 성실하게 살아내는 삶에 있다고 믿습니다.

     

    앞이 안보이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속상하지만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잃어버린 것을 되찾게 되는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하루 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면서 어깨에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기쁨으로 돌아오는 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삶의 모습이라고 믿습니다. 또한 방을 샅샅이 뒤지는 고단함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는 삶이 또한 우리들의 모습이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 여인의 마음이 진정으로 가난한 마음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요즘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이 앞으로 더 안좋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더욱 더 가난해 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럴 때에 우리들이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바로 드라크마 한 개의 신비입니다. 그 신비를 붙들고 기쁨의 구원을 누리는 삶이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https://www.youtube.com/live/eVUA7AuVGZM?si=FlUnrUjxMUlU0g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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