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누가 위대한 신앙인인가?
    설교 2025. 10. 3. 21:39

    제목: 누가 위대한 신앙인인가
    본문: 누가복음 17:5–10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그 은총을 매일의 삶 가운데서 누리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오늘 설교문의 제목을 “누가 위대한 신앙인인가?”로 정했습니다. 설교문의 제목을 정한 뒤에 저는 고민을 오랫동안 했습니다. 제 스스로는 ‘위대한’이란 단어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늘 설교문의 제목 안에 ‘위대한’이란 형용사를 최종적으로 넣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위대한’이란 단어가 문제어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큰 자인가?

    그런데 사실 복음서안에는 제자들 가운데 누가 큰 자인가?에 대한 논쟁들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훗날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자에 가까운 대접을 받게 되었고, 이들은 모두 ‘사도들’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신앙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존경할 만한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실제로 예수님의 사역이 가능한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훌륭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결국 시기와 질투의 문제는 극복이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누가 더 큰 사람인가?를 놓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사도들이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달라는 간청으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어도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믿음을 더하여 달라는 사도들에게 겨자씨와 같은 믿음을 말하셨습니다. 겨자씨와 같은 믿음만 있어도 이 뽕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기어라라고 하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할까요? 믿음이라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임을 말씀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실제로 뽕나무를 바다에서 자라도록 만드는 것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취해야 할 태도일까요? 아마 그렇다면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야 말로 위대한 농부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과 평행본문이라고 할 수 있는 마태복음 17장20절에는 겨자씨와 같은 믿음만 있더라도 이 산을 저쪽으로 옮기라고 하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11장 22절 이하의 말씀에서는 이 산을 들리어 저 바다에 심기어라 해도 그렇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누가복음은 마태복음에서는 겨자씨를 가져오고 마가복음에서는 바다에 심기우는 기적을 가져온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유사한 이야기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두 본문과 다른 접근을 우리는 발견해야 합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믿음을 가진 이들의 삶 가운데 일어난 놀라운 기적들과 믿음의 위대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면, 오히려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에서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아내야 하는 삶과 그 자세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밭을 갈고 양을 치는 종

    그런데 예수님은 이제 우리들에게 밭에서 일을 하고 들에서 양을 치는 종들에 대해서 말씀해주십니다. 여기서 말씀의 주인은 종이 아니라, 주인의 태도입니다. 종의 입장에서 볼 때는 굉장히 서운한 말씀을 지금 주님은 하고 계십니다. 종이 밭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또 들에서 양을 치는 종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 ‘어서 와서, 식탁에 앉아라’라고 말할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주인의 입장에서는 그들에게 집안에서도 할 일을 줄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너는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너는 허리를 동이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야, 먹고 마셔라”라고 말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실 당시의 종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주인이 자신들을 그렇게 대하는 것에 대해서 어떤 불평불만도 토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의 믿음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겨자씨 하나의 믿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지향해야 하는 삶의 모습이 바로 종들의 삶임을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그들이 믿음을 고백하고 살아내야 하는 삶이 바로 종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쓸모없음의 영성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일을 묵묵하게 수행하는 종들은 이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우리는 쓸모없는 종들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렇게 고백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종들이 쓸모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일들이 종들의 수고로 인해서 진행이 됩니다. 들에서 양을 치는 것도 종의 몫이고, 밭을 가는 것도 종들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일을 하고 대단한 평가를 원하지도 칭찬을 받을 것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다만 자신들이 해야 할 마땅한 일들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바로 우리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케노시스의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군가 오른 빰을 때리면 왼뺨을 내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고 누군가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벗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자신이 져야 하는 십자가를 묵묵히 지셨습니다. 그일을 하시고 생색을 내지도 자랑을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케노시스의 삶이며 겸손한 삶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이런 모습은 세상의 기준에서 볼 때는 ‘쓸모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삶일뿐입니다. 요즘의 부모들은 친구들이랑 싸움이 나면 맞고만 있지 말라고 가르친다고 합니다. 누군가 한대를 때리면 너는 두대를 때리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절대로 용서를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지혜로운 삶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머리가 될 지언정 꼬리가 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사실 교인들도 한동안 이렇게 기도를 많이 하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쓸모있는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하고 의미있는 삶이 되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이 한 일이 무의미하며 오히려 자신은 마땅히 해야 할 삶을 살아간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신 말씀인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사도들’에게 하셨습니다. 사도란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복음을 위해 따로 세움 받고, 증언자로 부름 받은 이들입니다. 그들에게는 당연히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믿음일까요?

    산을 옮기는 믿음?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을 말합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전혀 다른 믿음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결국,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살아내는 삶의 태도를 말합니다. 종으로 부름 받았다면 종답게 살아가는 것, 사도로 부름 받았다면 사도답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곧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시대에 신앙이 좋다, 믿음이 깊다, 위대한 신앙인이다라는 말은 곧 이런 뜻이 될 것입니다. “자신이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이 무엇인지 알고, 그 길을 기꺼이 걸어가는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입니다.

    산을 옮긴 사람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간 사람들 가운데 실제로 산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긴 사람들, 산을 바다로 옮긴사람들, 뽕나무를 바다에 심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영국의 정치가이자 신앙인이었던 윌리엄 윌버포스는 당대에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노예제도를 향해 혼자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당시에 당연하게 여겼던 노예무역에 대해서 반대를 했습니다. 그 이유로 그는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했고, 가족과 교회 내에서도 따가운 시선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복음의 사람으로서 자신이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담대하게 걸어나갔습니다. 그의 삶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바램대로 1807년에 노예무역 폐지법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는 산을 옮긴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어떤 기적이나 이적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태도, 바로 “쓸모없는 종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그 자세로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노예무역 폐지법이 통과된 3일 후에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실로 불가능했던 산을 옮겼던 사람입니다.

    겨자씨와 같은 작은 믿음 한 알

    그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저는 그것이 바로 그의 마음 속에 심기워진 겨자씨와 같이 작은 믿음 하나에서 왔다고 생각을 합니다. 진정한 위대함은 바로 겨자씨 한 알에 심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겨자씨는 살아있는 씨였다는데 있습니다. 크기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씨인지 아니면 죽어있는 씨인지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렇게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이지만 그 믿음 한 알이 있으면 그 씨앗과 같은 믿음이 사람을 살리게 하고 또한 산을 옮기기도 하는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자주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아니 목사님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들을 동시에 하실 수 있습니까?” 정말 그들은 제가 하는 일이 신기한가봅니다. 그런데 저도 때로는 제가 하는 일들이 이해야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 제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과 일들은 말하자면 산을 옮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떻게 산을 옮길 수 있는지 아십니까? 그저 성과를 바라보지 않고, 하루 하루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하는 것이라고 여기면서 살다가 보면 언젠가는 산이 옮겨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일들은 분명히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필요한 사람들

    그런데 여러분 저는 이 말씀이 믿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그 들 가운데 자신의 무기력함에 대해서 토로하는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자신이 다른 이들과 비해서 성공을 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른 이들에 비해서 한참 뒤쳐졌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론 루져라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모든 비교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명백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오롯한 입장도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이 심어준 편견일 뿐입니다.

    종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주인의 입장에서 볼 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입장에서 볼 때
    무의미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때론 그 일들이 무의미한 것 같고, 무가치한 일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시선으로 볼 때는 하나님 나라의 한조각이며 큰 그림의 일부분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새로운 시선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시키는 것은 바로 케노시스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그저 무익한 종일 뿐입니다. 자신은 그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고백말입니다. 그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놀라운 기적들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믿음은 묵묵히 마땅히 살아내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위대한 신앙인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겨자씨 한 알처럼 작고 연약해 보일 수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쓸모없어 보이고, 눈에 띄지도 않고, 성과로 환산되지도 않는 일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그 작은 믿음이 살아 있다면, 뽕나무를 뽑아 바다에 심는 일도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실제로 어디에 쓰이는지,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하는지, 한 가지 삶의 태도로 설명해 주십니다. “우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믿음은 결국 자신에게 맡겨진 삶을, 하루하루 묵묵히, 마땅하게 살아내는 태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그 삶이 밭을 가는 일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들에서 양을 돌보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세상 속에서 조용히, 그리고 진실하게, 자기 자리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삶의 태도는, 하나님의 시선 안에서 절대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그 어떤 성과가 아닙니다. 믿음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말하자면 산을 옮기고도, 자랑하지 않는 삶입니다. 믿음은 매일의 일상 안에서 살아있는 겨자씨 하나를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결국,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한 공동체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 작은 겨자씨 한알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마침기도

    주님, 우리가 작은 겨자씨와 같은 믿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그 믿음으로 산을 옮기려 하지 않고,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마땅히 살아내게 하소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주님의 은총을 믿고, 겸손히, 묵묵히 걸어가게 하소서. 쓸모없는 종이라 고백하지만, 그 삶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위대한신앙인 #윌버포스 #겨자씨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 집으로 내려간 신앙  (0) 2025.10.26
    지연된 감사, 지연된 구원  (0) 2025.10.12
    환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  (1) 2025.09.28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주님  (1) 2025.09.14
    완성하는 삶, 제자도의 길  (1) 2025.09.07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