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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낮은 자리에서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
    설교 2025. 8. 31. 13:59

    제목: 낮은 자리에서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

    본문: 누가복음 14:114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도 주님의 은혜와 평안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은총을 매일의 삶 가운데 누리면서 살아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1. 누가 신앙이 좋은 사람인가?

     

    여러분, 사람들이 흔히 저 사람은 신앙이 참 좋다라고 말할 때, 보통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말할까요? 매주 빠짐없이 교회에 나오는 사람일까요? 교회에서 직분이 더 높은 사람일까요? 아니면 봉사와 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일까요? 혹은 기독교 교리에 대해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가진 사람일까요?

     

    성경을 줄줄 외우는 사람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요. 사람들은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신앙이 좋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런 모습들이 다 소중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것이 곧 구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합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면, 그 신앙이 자기 삶을 구원으로 이끌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지점을 건드리며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신앙은, 정말 생명을 살려내고 있느냐?”

     

    2. 안식일에 해야 할 일

     

    여러분, 지난 주에도 우리가 안식일에 벌어진 논쟁을 함께 살펴보았지요. 그런데 혹시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없으십니까? “왜 그렇게 안식일이 문제 되었을까?” “왜 예수님은 유독 안식일마다 사람들을 고치셨을까?”

     

    안식일은 본래 하나님께서 주신 복된 날이었습니다. 창조의 완성을 기념하는 날이었고, 억눌린 자가 쉼을 얻는 날이었지요. 그런데 유대 사회 안에서 안식일은 점점 규칙과 규정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을 하면 안 되고, 그 기준을 얼마나 철저히 지키느냐로 사람의 신앙을 판단하게 된 겁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굳어진 틀을 흔드셨습니다.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규정의 날로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사람을 살려야 하는 날로 다시 보여주신 것입니다.

     

    3. 지연된 정의, 지연된 사랑

     

    예수님이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받아 들어가셨습니다. 그 자리에 몸이 부어오른 환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 여러분, 대답은 뻔하지 않습니까? 사람을 살리는 게 맞지요. 그런데 그들은 대답을 못 합니다. 사람을 살려야 할까, 규정을 지켜야 할까 저울질하다가 결국 침묵해버립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자주 쓰는 표현 가운데 지연된 정의(delayed justice)’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의가 제때 실현되지 않으면, 사실은 정의가 부정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지요. 사랑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사랑해야 할 때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결국 사랑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바로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순간이 왔는데, 규정을 핑계로 머뭇거리며 침묵했습니다. 그들의 침묵은 단순한 망설임이 아니라, 지연된 정의, 지연된 사랑이었고, 결국은 정의도 사랑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침묵을 깨뜨리십니다. 그리고 병든 자를 붙잡아 고쳐주십니다. 지체 없는 사랑, 지체 없는 정의,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었습니다.

     

    4. 무엇을 지켜야 할 것인가?

     

    여러분, 유대인들이 왜 그렇게 안식일을 지키려 했을까요? 그 뿌리를 생각해 보면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이었습니다. 바벨론 포로 시절,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서, 그들이 붙잡을 수 있는 마지막 신앙의 울타리가 바로 안식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다라는 표징이었지요.

     

    하지만 그 순수한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했습니다. 안식일은 단순한 쉼과 회복의 날이 아니라, 누가 더 잘 지키는가를 증명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경건을 과시하고, 자기 권위를 세우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회당장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안식일에는 고침을 받지 마시오!” ( 13:14)

     

    여러분, 이게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겁니다. 그 순간 안식일은 하나님을 기억하는 날이 아니라, 자기 기득권을 유지하는 도구가 되어버렸습니다.

     

    5. 가치의 전복을 시도하다

     

    예수님은 또 다른 장면을 보십니다. 사람들이 앞자리를 차지하려 애쓰는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혼인 잔치에 가거든 윗자리에 앉지 말고, 맨 끝자리에 앉아라.”

     

    여기서 맨 끝자리’, 헬라어로 에스카톤이라는 말이 쓰입니다. ‘마지막 자리’, 곧 사람들이 앉기를 거부하는 낮고 천한 자리를 앉으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여기에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낮은 자리가 부끄러운 자리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 자리가 영광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잔치 주인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되갚을 수 있는 사람들을 부르지 말고, 되갚을 수 없는 사람들을 불러라.” 왜냐하면 갚을 수 없는 사람을 초대할 때, 하나님께서 의인들의 부활 때에 참되게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식탁은 되갚을 수 없는 이들과 함께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회당장은 모든 것을 자신의 해석의 틀에 맞추어 사람들을 재편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앉으려 하지 않는 가장 낮은 끝자리, 곧 에스카톤으로 내려가셔서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시고, 말씀하시고, 치유하셨습니다.

     

    6. 낮은 곳에 서라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디에 앉아 있습니까? 더 높은 자리입니까, 낮은 자리입니까? 되갚을 수 있는 사람들과만 함께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갚을 수 없는 사람들과도 함께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예배와 전통은 지키지만, 정작 생명을 살려내는 일에는 소홀하지 않습니까? 직분과 권위는 붙잡으면서, 낮은 자리에서 함께 울고 웃는 일에는 부족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낮은 자리로 내려오라.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다.”

     

    7. 낮은 자리에서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는 믿습니다. 삶이 곧 구원의 자리라는 것을요. 낮은 자리에서 서로를 환대하고, 되갚음을 바라지 않고, 생명을 살려내는 그 삶이 이미 하나님 나라의 시작입니다. 낮은 자리로 내려간다는 건 내가 가진 특권과 기득권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것을 붙잡을 때가 아니라, 내려놓을 때 참된 자유를 주십니다. 그 길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길입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 모두가 낮은 자리에서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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