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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도원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설교 2026. 10. 4. 10:15

    포도원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마태복음 21:33~46 · 세계성찬주일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우리는 마태복음의 포도원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오후 다섯 시가 되도록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포도원으로 초대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이야기했고, 지난주에는 처음에는 아버지의 말씀을 거절했지만 나중에 뉘우치고 포도원으로 일하러 간 아들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포도원 이야기는 사뭇 다릅니다. 포도원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주인이 보낸 종들을 때리고 죽이더니, 마침내 주인의 아들까지 죽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폭력을 저지른 사람들이 포도원 밖에서 침입한 사람들이 아니라, 포도원을 맡아서 돌보아야 할 농부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마음에 품고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포도원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 포도원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1. 주인이 되고 싶었던 농부들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먼 나라로 떠났다는 이야기로 비유를 시작하십니다. 주인은 울타리를 치고 포도즙을 짜는 확을 파고 망대까지 세운 뒤에 포도원을 맡겼습니다. 농부들이 받은 것은 빈 들판이 아니었습니다. 필요한 모든 것이 이미 갖추어진 포도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수확할 때가 되어 주인이 자기 몫의 열매를 받으려고 종들을 보내자, 농부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습니다. 주인이 다시 종들을 보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주인은 아들만큼은 존중하리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아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아들을 보자 오히려 그를 죽이기로 모의합니다. 그가 누구인지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상속자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죽이면 포도원을 차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농부들은 그를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어 죽이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주인에게 돌아갈 열매를 내어주지 않으려 했을 뿐인데, 마침내는 포도원 자체를 차지하려고 한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욕망이 가진 무서운 속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그것이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게 되고, 마침내 자신이 주인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를 누구 앞에서 하셨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앞에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예수님께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물어야 했던 것은 자신들이 누구의 권한으로 성전을 맡고 있으며, 누구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켜 온 권한과 질서를 소중하게 여겼지만, 결국 그 질서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인이 돌아오면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시자, 그들은 그 악한 자들을 없애고 포도원을 다른 농부들에게 맡길 것이라고 스스로 대답합니다. 그리고 곧 그 이야기가 자기들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런데 마태는 그들이 뉘우쳤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잡으려 했다고 전합니다. 지난주에 만난 아들은 뒤늦게라도 뉘우치고 포도원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기 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주인의 자리에 오래 앉아 있던 사람에게는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일이 그만큼 어렵습니다.

     

    2. 착한 사람이 아니라 청지기의 삶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포도원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가정과 일터,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 그리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포도원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 삶을 일구기 위해 많은 수고를 합니다. 농부들도 아무런 수고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포도원을 경작하고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그 수고는 귀한 것이며 마땅히 존중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내가 오랫동안 수고했다는 사실이 곧 내가 주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자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낳고 사랑으로 양육하지만, 그렇다고 자녀의 인생까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에게 맡겨진 일은 자녀가 부모의 뜻대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돌보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구어 온 일터와 재산도, 함께 섬기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포도원의 주인이 아니라 포도원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청지기의 삶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청지기로 살아가는 것과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나누고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그런 삶은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착하다는 것은 대체로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행동을 보고 내리는 평가입니다. 청지기는 사람들의 평가보다 자신에게 일을 맡긴 주인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농부들과 착한 사람이 뜻밖에도 한자리에서 만납니다. 농부들은 주인의 자리에 자기 자신을 앉혔습니다. 착한 사람으로만 살아가려는 사람은 그 자리에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앉힙니다. 겉모습은 정반대이지만, 주인이 누구인지를 잊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한쪽은 맡겨진 것을 움켜쥐다가 포도원을 무너뜨리고, 다른 한쪽은 모든 요구를 들어주다가 맡겨진 삶을 소진합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은 그 둘과 달랐습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가버나움에서 저물도록 병자들을 고치신 다음 날 새벽에 예수님은 한적한 곳으로 나가 기도하십니다. 제자들이 찾아와서 모든 사람이 선생님을 찾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자리로 돌아가면 환영받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까운 다른 마을들로 가자고 하시면서, 당신은 그 일을 하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다리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분명 서운한 거절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충실하셨던 것은 사람들의 기대가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청지기에게도 부탁을 거절해야 할 때가 있고, 사람들이 불편해하더라도 해야 할 말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인은 우리가 맡은 포도원에서 어떤 열매를 기다리실까요?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마치시면서 하나님 나라가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이들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열매가 무엇인지는 이사야가 부른 포도원의 노래가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의를 바라셨는데, 들려온 것은 억울한 사람들의 부르짖음이었습니다. 그러니 주인이 기다리시는 열매는 풍성한 수확이나 개인적인 성공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면서 다른 사람의 몫을 존중하고, 자신이 거둔 것으로 다른 사람도 함께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풍성하게 만들어 가는 삶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청지기의 삶이라고 믿습니다.


    3. 버린 돌과 주님의 식탁

     

    예수님께서는 비유 끝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시편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사람들은 아들을 버리면 자신들의 권한과 질서를 지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버린 바로 그분을 머릿돌로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십자가와 부활을 바라봅니다. 포도원 밖으로 끌려 나가 죽임을 당한 아들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려던 사람들의 계획 위에, 하나님께서는 전혀 다른 집을 지으셨습니다.

     

    오늘은 세계성찬주일입니다. 세계 곳곳의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식탁에 참여하면서 우리가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임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한 뒤 이 식탁 앞에 서니 같은 질문이 다시 떠오릅니다. 이 식탁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목회자도 아니고, 교회를 위해 오랫동안 수고한 사람도 아닙니다. 이 식탁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는 모두 그분의 초대를 받아 이 자리에 나온 사람들입니다.

     

    농부들은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주인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식탁에서 기억하는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농부들은 남의 몫까지 빼앗으려 했고, 예수님은 자신의 것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저는 성찬을 나눌 때마다 ‘공수래공수거’라는 말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이 세상에 왔고, 주님의 은총을 받아 살아가다가 결국 빈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빈손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내어주시는 떡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이 은총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것을 끝없이 움켜쥐어야 할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식탁에 나아가는 것은 누가 더 많이 수고했고 누가 더 큰 권리를 가지고 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내어주시는 생명의 떡을 감사함으로 받고, 우리가 받은 은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지만, 그 빈손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누리고 또 다른 사람에게 건네줄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된 인생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착하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살아가는 일이 아닙니다. 주인이 누구이신지를 기억하면서 맡겨주신 삶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이 식탁에서 경험한 은총이 우리의 가정과 일터,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포도원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울타리를 치고 포도즙을 짜는 확을 파고 망대를 세우시며 포도원을 정성껏 마련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이루고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포도원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면 좋겠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땅이 메마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우리가 애써 가꾼 것을 무너뜨리는 일들 때문에 염려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포도원의 주인이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포도원을 소유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돌보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이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을 세우시는 머릿돌이십니다.

     

    주님께서 마련하신 포도원에서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맡겨진 것을 성실하게 돌보며, 그 열매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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