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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에 세운 마을-곁이 되어주는 신앙공동체설교 2026. 2. 8. 10:42
산 위에 세운 마을 — 곁이 되어주는 신앙공동체
본문: 마태복음 5:13-20
산 위의 가르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주 우리는 예수님의 ‘팔복’ 말씀을 함께 읽으며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그 말씀을 여러분과 나누는 동안, 저는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팔복은 우리에게 더 애쓰라고 요구하는 말씀이기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보라는 초대처럼 들렸습니다. 동시에,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자 애쓰는 이들이야말로 이미 복된 사람들이라는 선언처럼 들렸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먼 옛날 산 아래에 모여 있던 군중만을 향한 말씀이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을 향한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마태복음 연구의 거장인 W. D. Davies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곧 산 위에서의 가르침을 ‘제2의 시내산 사건’이라고 불렀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세워졌듯이, 산상수훈의 ‘팔복’ 말씀 역시 그리스도인들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단순한 도덕 강론이 아닙니다. 그저 마음을 달래는 위로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자리는 새로운 출발이 선포되는 자리이며,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다시 불려 나오는 자리입니다.
유대교와 토라, 그리고 예수님의 산상수훈
마태복음 연구의 거장인 W. D. 데이비스는 평생을 바쳐 유대교와 토라, 곧 율법을 연구했습니다. 그가 여기에 집요하게 매달린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대교와 토라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지와 선포는 바로 그 지평 위에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유대교를 파괴하거나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완성하기 위함임을 밝혔습니다. 그 연구의 결실로 데이비스는 마태복음 신학을 대표하는 학자가 되었고, 마태복음이 결코 율법을 버린 복음이 아니라 율법의 깊은 뜻을 새롭게 드러내는 복음임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
그렇다면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께서 왜 가장 먼저 소금과 빛, 그리고 산 위에 세운 마을의 이야기를 꺼내셨을까요.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을 개인의 경건이나 내면의 결단으로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율법이 완성된 삶의 모양, 곧 공동체가 세상 가운데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지를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은 개인 한 사람에게 주어진 덕목이라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향한 선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이렇게 들립니다. “너희들은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들은 세상의 빛이다.” 율법의 완성은 혼자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율법 조항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고군분투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존재, 곧 소금과 빛의 존재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소금은 스스로를 드러내는 존재가 아닙니다. 눈에 띄지 않지만 없어지면 곧바로 드러나는 존재입니다. 빛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을 비추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이들이 다시 방향을 찾도록 돕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란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누군가의 삶에 소금과 같은 존재, 그리고 빛과 같은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숨길 수 없다
또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숨길 수 없다.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놓아 집 안의 모든 사람에게 비추게 한다.” 예수님은 여기서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먼저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무엇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말씀하십니다. 그 이미지로 예수님은 직접 ‘산 위에 세운 마을’을 비유로 들으셨습니다.
먼 길을 걷는 나그네들에게 산 위에 세운 마을은 구원의 희망과 같은 존재일 것입니다. 고단한 먼 길을 걸어온 이들에게 휴식을 주는 공간이 바로 ‘산 위에 세운 마을’일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이들, 예수와 함께하는 이들이 그렇게 ‘산 위에 세운 마을’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함을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일부러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됩니다. 빛이 오면 어둠이 물러가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마을은 언제부터 성벽이 되었을까?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이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과연 ‘산 위에 세운 마을’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을까요. 삶에 지친 사람들이 멀리서 바라보며 다시 걸어갈 힘을 얻을 수 있는 이정표로 서 있기는 할까요. 아니면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것처럼, 존재는 남아 있지만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몇 년 전, 언론인 손석희 씨의 프로그램에 이런 문구가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기업이 되었고, 한국으로 오면서 대기업이 되었다.” 한국교회에 몸담고 있는 우리로서는 듣기 쉽지 않은 말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말에 선뜻 반박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말은 결국 교회가 더 이상 ‘산 위에 세운 마을’이 아니라, 자기들만의 안전을 위해 성을 쌓고 성벽을 높이 올린 공간이 되었다는 비판이기 때문입니다.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사람들을 맞이하고 환대하며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드러난 곳이지만, 성벽으로 변한 공간은 사람들을 가려내고 막아서며 차별하는 곳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소금과 빛의 공동체,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마을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워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잇기보다,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왜 마을보다 성벽을 선택했을까?
그렇다면 질문은 여기까지 내려옵니다. 무엇이 우리를 산 위에 세운 마을이 아니라 ‘성벽’으로 이동하게 만들었을까요. 첫째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동안 교회는 더 이상 안전한 공간으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신앙이 삶을 지켜주기보다 오히려 설명해야 할 대상이 되었고, 그 불안 속에서 우리는 곁에 서는 용기보다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을 먼저 택했습니다. 그래서 마을은 점점 닫혔고, 성벽은 점점 높아졌습니다.
둘째는 성장의 착각이었습니다. 숫자가 늘어나면 살아 있는 것 같았고, 건물이 커지면 영향력이 생긴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소금과 빛의 기준은 크기나 규모가 아니었습니다. 소금은 많다고 짜지지 않고, 빛은 크다고 밝아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얼마나 많은가’를 묻기 시작했고, ‘어디에 서 있는가’를 묻지 않게 되었습니다.
셋째는 곁의 상실이었습니다. 마을은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지만, 성벽은 관리하는 공간입니다. 곁에 선다는 것은 시간이 들고 상처를 감당해야 하며, 예측할 수 없는 삶을 함께 끌어안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점점 관계보다 시스템을, 사람보다 구조를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드나드는 시설처럼 느껴지게 된 것은 아닐까요.
곁에 서 있는 공동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성벽을 세우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산에 오르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가려내는 성벽을 쌓지 않으셨고, 안전한 내부를 만들기보다 불편한 경계로 걸어 나오셨습니다. 그분은 늘 곁으로 이동하셨고, 멀리서 지켜보지 않으셨으며, 사람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우신 공동체는 완벽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마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새롭게 질문해야 합니다. 이 시대에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어떤 곳이어야 할까요. 이 질문은 비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질문이어야 합니다. 저는 그 방향을 바로 곁에 서 있는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힘도, 자본도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분명히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소금과 빛과 같은 존재로서 누군가의 곁에 서 있을 수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 감당해야 할 소금과 빛의 직분이라고 믿습니다.
불안한 시대, 든든한 사람들
저는 목회를 시작한 뒤로 늘 마을을 꿈꾸어 왔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삶의 터전, ‘산 위에 세운 마을’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 꿈을 따라 어린이북카페 숲을걷다를 시작했고, 1시간학교를 운영했습니다. 매일 함께 밥을 먹고 공부하는 시간이 우리를 성장으로 이끌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커피마을’, ‘마을공작소’, ‘달려라커피’를 시작했고, 브리딩커피바는 이제 그곳에서 일하던 청년의 삶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파이퍼119를 통해 하수구 관리업으로도 새롭게 출발하려 합니다.
제가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돈을 벌어 부자가 되기 위함이 아닙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산 위에 마을을 세우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미국의 아마존에서는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수많은 직원들이 해고되었고, 한국에서도 콜센터 노동자들이 같은 이유로 일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세상의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인공지능을 사용하지만, 제 방향은 정반대입니다. 사람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더 고용하고 사람의 곁이 되기 위함입니다. 이 길은 자본주의의 논리를 거스르는 길일지 모르지만, 오래된 길이며 확실한 길, 주님이 함께하시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 교회가 ‘산 위에 세운 마을’로서, 소금과 빛의 직분을 감당하는 공동체로 우뚝 서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 길에 함께 서 주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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