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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려감의 영성, 하나님께로 올라간 사람
    설교 2025. 11. 2. 10:34

    설교문: 내려감의 영성, 하나님께로 올라간 사람
    본문: 누가복음 19장 1절 – 10절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라도 그 은총 가운데 평화를 누리시는 우리 모두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뽕나무에 올라간 사람

    오늘 우리가 읽은 성서 본문에는 익숙한 이름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삭개오입니다. 그는 여리고의 세관장으로 부와 권력을 가진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그에게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로 인해서 부귀와 권력을 얻는 것에는 성공을 얻었지만, 그는 오히려 사람들에게는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성서는 그가 단순한 세리도 아니고 세리들을 총괄하는 세관장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아주 높은 곳에 오른 사람,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사람들로부터는 죄인으로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키가 작은 삭개오

    그런데 우리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삭개오의 역설적인 면을 보게 됩니다. 흔히 생각을 할 때, 권력을 가진 세관장이라면 마땅히 좋은 자리에서,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예수님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가 "키가 작아" 무리 때문에 예수님을 볼 수 없었다고 기록합니다. 삭개오의 이 '작음'은 단순한 신체의 약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죄인의 낙인 때문에 사람들 틈에 섞일 수 없었던 사회적 소외, 그리고 부와 성공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않았던 영적인 외로움을 상징합니다.

    그는 세상의 꼭대기에 있었지만, 예수님과의 만남을 위해서는 높은 곳으로 숨어야 하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곳에서 모든 것을 홀로 수행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연결된 사람이 아니라 분리된 사람이었고, 혼자만의 외로운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세관장’이라는 큰 이름보다 오히려 키가 작은 사람이란 표현이 그의 본질을 나타내는 말일 것입니다.

    예수님, 보고싶어요

    그런데 이렇게 외로운 삶을 살았던 삭개오에게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이 싹터오는 것을 우리는 오늘 성경본문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그에게는 더이상 어떤 희망도 없어보입니다. 문제는 그가 올라야 할 더 높은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미 세관장이 되었으니,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셈이 됩니다. 그 자리가 사람들은 부러움의 자리였을지 모르지만, 그는 이제 자신이 더 이상 올라야 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안 이상 그의 삶에는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이 찾아왔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오른 ‘세관장’이란 자리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권태감에 빠졌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볼때에는 모든 사람들은 돈과 관련되어서 살아가고 있고, 또한 돈은 자주 사람들로 하여금 회의감에 빠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돈에 관련된 일이라면 그는 그 어떤 사람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 부분이 오히려 사람들과 멀리 지냈던 역설적인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살아왔던 돈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로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그분이 무척이나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 마음이 바로 삭개오에게는 새로운 변화의 출발점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르고 오르고 또 올랐던 사람, 삭개오

    그래서 그는 이제 예수님을 만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삶의 변화가 필요했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을 보고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을 볼 수 가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서 이야기 할 생각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저 “어떤 사람인지 한번 보기라도 하자”라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작은 키에 있었습니다. 아마도 ‘작은 키’는 그에게 열등감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가 세관장으로 성공을 하게 된 것에는 그의 작은 키도 일조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열등감에서만 머물러 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하면서 조금씩 위로 오르고 또 올랐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그동안 자신이 했던 방식으로 오르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곳이 바로 뽕나무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은 우수꽝스러운 모습이였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전혀 다른 두 존제가 부각되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을 움켜주면서 살았던 삭개오와 모든 것을 베풀고 나눠주면서 살았던 예수님이 만나게 된 것입니다.
      
    삭개오야 내려와라

    사람들이 삭개오를 보고 웃었던 것은 그들은 삭개오를 그저 키작은 세관장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삭개오의 마음 속에 자라고 있던 열망을 한 눈에 알아보셨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예수님은 단박에 알아차리셨던 것입니다. 어쩌면 저는 성서에서 나오는 ‘염화가섭’과 같은 부분이 바로 이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랐을 때 그가 느끼는 허전함과 외로움을 알아차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내려와라”

    그런데 저는 이 한마디가 삭개오를 무너뜨리게 한 결정적인 한 마디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삭개오는 계속해서 높이 오르는 삶이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서 세리가 되었고, 열심히 살면 살 수록 더욱 더 고립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마침내 가장 높은 세관장이 되었지만,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당황스러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이 그의 삶에 다가오셔서 그의 삶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삭개오야 내려와라” 이 한 마디 안에 모두 들어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내려감의 영성이라고 여러분들에게 말하려고 합니다. 그 길은 그가 그동안 살아왔던 삶과는 전혀 다른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걸어가는 길이 아닌 주님의 손에 이끌림을 받아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내려감의 길,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

    저는 성서를 읽으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는 언제나 상승과 하강의 곡선이 함께 그려진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던 그 밤, 그 곁에는 사다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천사들을 보면서 야곱은 하늘과 땅을 잇는 하나님의 움직임을 보았습니다. 그는 높은 곳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두려움과 실패의 밤, 바로 그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또한 지난주에 함께 나누었던 세리의 비유에서도 예수님은 “그는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으로 내려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려간 사람이 하나님께 가까이 간 사람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의 길에 동행하셨습니다. 실패와 절망의 길, 믿음을 잃고 돌아가던 그 내려감의 여정에서 주님은 함께 걸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오름이 아니라, 우리의 내려감 속에서 우리를 만나십니다.

    이제 삭개오 역시 그 영적 변곡점 위에 서 있습니다. 그는 평생을 오르며 살았습니다. 부를 쌓고, 지위를 얻고, 명예를 추구하며, 세상의 꼭대기를 향해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전혀 다른 길을 보여주십니다. “삭개오야, 내려와라.” 그 한마디가 그의 인생의 방향을 바꿉니다 이제 그가 가야 할 길은 더 이상 오름의 길이 아니라, 내려감의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려감의 길이야말로
    그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참된 영성의 길이었습니다.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신 예수

    그런데 우리는 성서를 통해서 예수님의 삶도 ‘내리막’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분은 하늘의 영광 가운데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세상에서 가장 낮고 천한 마을, 베들레헴의 말구유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분은 태어날 때부터 ‘환영받지 못한 분’이셨습니다. 여관에는 그분이 들어갈 방이 없었고, 사람들은 그분의 탄생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후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는 나사렛 출신이 아니냐? 거기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예수님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아무 데서도 인정받지 못한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높은 분이셨지만,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분의 인생은 ‘하강의 여정’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도 낮았고, 살아가실 때도 낮았고, 마침내 죽으실 때에는 모든 것을 비워 십자가의 자리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그분은 내려오심으로써 인류를 하나님께로 올려 세우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또 한 번, 가장 낮은 사람, 가장 죄가 많은 사람, 바로 삭개오를 선택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습니다. “그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으려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망설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당신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자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곳이 바로 사랑의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신학적으로 이것을 ‘케노시스(kenosis)’라고 부릅니다. 자기를 비움의 영성, 곧 내려감의 영성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비워 하나님께 순종하셨고, 그 비움이 구원의 문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자기를 낮추사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리스도의 내려오심이 있었기에 삭개오의 내려감이 가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내려오셨기에, 인간은 비로소 하나님께 올라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제 삭개오의 집에 내려오셔서 함께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삭개오의 삶의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자기를 비우고 나눠주는 삶

    삭개오의 변화는 단순히 마음의 감동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모셔 들이자마자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결단을 내립니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누구에게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습니다.” 그의 말은 감정의 고백이 아니라 존재의 전환 선언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움켜쥐던 손을 펴서, 이제는 나누는 손으로 바꿨습니다. 그 손끝에서 비로소 복음이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났습니다.

    삭개오의 ‘내려감’은 자기비움의 실천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재산의 절반을 나누며, 이제 더 이상 소유가 아닌 관계를 선택했습니다. 그의 마음이 비워지자, 그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향해 선언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것이 구원의 본질입니다. 구원은 저 멀리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워진 마음과 열린 손을 통해 삶의 현장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삭개오는 이제 더 이상 올라가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내려와서, 나누며, 함께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집이 구원의 장소가 된 이유는 그곳이 하나님께로 열린 낮은 자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시인 고은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삭개오는 내려갈 때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보았고, 그분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얼굴 속에서 자신의 참된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는 지난 20년동안 이 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삶의 내리막길 앞에 선 많은 이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그렇게 삶의 내리막길 앞에 서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이제 더이상 어떤 노력을 해도 안될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저는 무기력감 가운데 한 고백이 아니라, 말하자면 삭개오와 같은 고백이었습니다. 그 말은 다른 말로 하자면, “예수님 보고싶어요”라는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더이상 오르막길이 아니라,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예수님과 함께 동행을 하면서 비우고 나누면서 살아가는 축복된 삶이 되길 바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그 복음의 비밀을 깨우치면서 인생에서 만나게 된 ‘내리막 길’을 축하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내리막 길에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기도문


    주님, 오늘 말씀 속에 우리를 찾아오셔서 “삭개오야, 내려오너라” 부르신 그 음성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쌓아 올린 체면과 불안의 높이에서 내려와 비워진 마음, 열린 손으로 주님을 모시게 하소서.

    하늘 영광을 비우시고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오신 예수님, 그 사랑의 케노시스 안에서 우리도 내려감의 길을 걷게 하소서. 나의 권리보다 이웃의 필요를 먼저 보게 하시고, 소유의 논리보다 관계의 질서를 선택하게 하시며, 움켜쥔 손을 펴서 나누는 기쁨을 알게 하소서.

    주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하신 선언이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 다시 울리게 하소서. 내리막길에서 주님을 만나도록, 낮아진 자리에서 오히려 높아지는 은혜를 보게 하소서.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그 꽃— 주님의 얼굴과 이웃의 참된 얼굴을 보게 하소서.

    이 한 주,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불러 주시는 주님과 동행하며 비우고, 나누고, 함께 사는 내려감의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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