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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는 삶의 비결설교 2025. 11. 16. 10:51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는 삶의 비결
요한복음 6:25–35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의 삶에 고요히 머물기를 바랍니다. 오늘 추수감사절 예배에 나오신 모든 교우분들을 축복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 교회를 이십년 이상 담임하면서 교우들과 비교적 오랜 시간을 함께 동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우들의 삶의 면면을 잘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당신들의 삶에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에 무엇보다 여러분들의 삶을 축복하고 응원하게 됩니다.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들의 삶에 넘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살아간다고 해서 삶의 문제들이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20년 전에도 어려운 삶을 살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해결은 되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은 수렁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기도를 하면서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경우들도 허다합니다. 그리고 야속하게도 시간이 지난다는 것은 나이들어가는 것을 말하고 우리의 몸과 건강은 더욱 약해져만 갑니다. 이런 일들을 겪다가 보면 의기소침해 지기 쉬운 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혹시 여러분은 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저는 이런 일에는 전문가라고 자부할 만큼 남들은 쉽게 하지 못하는 새로운 일들을 많이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성공보다는 오히려 실패를 더 많이 한듯 합니다. 그런 가운데 조금씩 성장을 하고 있으니, 이런 분야라면 저도 한마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마음이 들고 오히려 차분해 지기도 합니다. 성공을 했느냐, 실패를 했느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 일어나야 할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여정을 걷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훨씬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그래서 이제는 전에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도 새로운 일들을 시도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바로 이런 우리의 현실을 깊이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을 붙잡는 가운데 우리 모두가 참된 삶의 충만함을 다시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본문을 다시 읽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서 전체를 통틀어 인간의 ‘허기’와 ‘굶주림’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다루는 본문이 또 있을까? 그만큼 이 말씀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을 비추고 있습니다. 제가 성서를 사랑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서는 인간이 경험하는 거의 모든 문제와 정서들을 피상적이 아니라 존재 깊숙한 자리에서 끌어올려 조명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또한 우리가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느끼고 있는 ‘삶의 허기’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내면에서는 계속해서 갈급해지는 그 마음, 그 허기와 목마름에 대해 예수님은 아주 정직하게 대답하십니다.
풍요 이후에 허기진 사람들
오늘 본문의 주인공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굶주렸던 이들이었지만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으로 인해서 배가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만족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더욱 더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배를 빌려서 예수님을 따라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고 함께 하면 자신들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허기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사람들이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시기 위해서 말씀을 전하신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 분이 말씀을 하시게 된 것은 하나님나라가 이 곳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할 삶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말하자면, “깨어서 기다리자”라는 요지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영적인 갈급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을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오히려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니 그 아이러니가 깊이 다가옵니다.
해결되지 않는 삶의 허전함
인생을 살다보니 알게 되는 것이 있는데 삶에서 중요한 것은 ‘포만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포만감이라는 것이 먹거리를 통해서 얻게 되는 것 만이 아닌 삶의 다양한 일들을 통해서 얻게 되는 ‘만족’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포만감’이라는 것이 항상 늦게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뇌가 ‘포만감’을 느낄 정도가 되면, 사실 우리는 너무 많이 먹은 뒤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너무 많이 가지게 된 것이 우리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소비하지 않고 담백하게 살아가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다고 합니다. 포만감을 쫓는 삶이 아니라, 적게 먹고 적게 소비하며 적게 일하는 미니멀리즘의 삶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은 삶의 비결이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유행하는 미니멀리즘과 맞닿아 있는 가르침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당시에 당신을 따라온 제자들에게 미니멀리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들의 삶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비하면 이미 ‘미니멀리즘’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그들에게 전혀 다른 삶에 대해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는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살기 위해서 양식이 필요한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굶주린 이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배풀어 주신 것입니다. 아무리 귀한 말씀을 듣는다고 해도 배고픔을 해결할 방법은 빵과 물고기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 양식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기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는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여기서 주님은 전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양식을 얻기 위해 일하고, 성과를 내고, 어떤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과 성과가 있어야 양식이 생기고, 양식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영생에 이르는 빵을 위해 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과 ‘성과’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집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하나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다.”(33절) 예수님은 ‘빵’을 은유로 사용합니다. 우리가 노력하여 얻는 빵은 썩어 없어질 양식이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은 썩지 않고, 세상에 생명을 주는 양식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선언을 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35절)
여기서 예수님은 단순히 “빵을 주는 분”이 아니라 “빵 그 자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우리가 찾아 헤매던 영생의 양식은 이미 인격으로 우리에게 오신 분,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을 추구하게 될 때 우리의 영혼은 비로소 영생에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우리는 이렇게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 하는 일을 놓고, 예수님만 바라보며 살자”는 뜻이 아닙니다. 예배만 하고, 신앙적인 일만 하며 살아가라는 부름도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우리를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의 삶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그 길은 이미 예수님의 말씀 속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이 땅으로 오신 이유는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함이었고, 그분이 우리의 생명의 빵이 되신 이유도 우리의 삶을 영생으로 이끌고, 소생시키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얻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그분이 하셨던 것처럼 세상에 생명을 주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일하고 먹고 살아가는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고, 무엇을 위해 먹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걸까요? 이 질문을 던지는 한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작품입니다.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남들이 보기에는 참 풍요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안정된 직장, 괜찮은 재정, 결혼, 도시의 세련된 삶까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자면 그녀는 부족함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고백은 이랬습니다. “왜 이렇게 공허할까? 왜 배부른데도 또 배가 고프고, 이렇게 많은데도 왜 마음은 허전할까?” 풍요를 누렸지만, 속은 여전히 허기진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속 사람들이 오병이어를 먹고도 다음 날 다시 허기를 체우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았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이 허기의 원인을 찾기 위해 그녀는 1년 동안 여행을 떠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먹고, 인도에서는 기도하고, 발리에서는 사랑하며, 자신을 채워보려 합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것— 모두 중요한 일들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말합니다. 그 어느 것도 영혼의 깊은 허기를 완전히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 왜냐하면 그것들은 결국 ‘썩어 없어질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는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여라.” 영화 속 여인도, 오병이어를 먹은 사람들도, 그리고 우리 모두도 평생을 통해 이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나는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무엇이 나를 진짜 채우는 양식인가?” 예수님은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무엇으로 살려 하지 말고, 누구로 살아라.” 충만의 비결은 ‘더 많이’가 아니라 그분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부족해도 주님 안에 머무는 삶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에는 늘 부족함이 있습니다. 어떤 날은 마음이 허기지고, 어떤 날은 관계가 목이 마르고, 어떤 날은 현실의 무게가 포만감을 앗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부족함을 “없애주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게 오는 사람은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약속은 “문제가 없어질 것이다”가 아니라 “너는 내 안에서 채워질 것이다”입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불완전해도, 삶이 아직 미완이어도 주님 안에 머무는 자는 허기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더 얻으려는 허기가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더 닮고 싶은 갈망으로 변합니다. 그 갈망은 우리를 지치게 하지 않고, 오히려 살아 있게 합니다.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포만감이 늦게 와도 괜찮습니다. 삶의 답이 아직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 머무는 사람은 상황은 여전히 흔들려도 영혼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현실은 가난해도 영혼은 부요합니다. 포만감이 늦게 와도 충만함은 이미 시작됩니다.
주님이 우리의 생명의 빵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빵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예수님 안에 머물기로 결단하십시오. 그분의 말씀 안에, 그분의 평화 안에,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그분 안에 머무는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에 고요히 시작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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