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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설교 2025. 8. 3. 10:23
설교 제목: 내 영혼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본문: 누가복음 12:13–21
1. 바다 위에서 만난 질문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난주 저희 교회는 퇴수회로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는 비행기를 타지 않고 배를 이용했기에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가는 길에는 잠자리가 불편해 힘들어하신 교우들도 계셨습니다. 그 부분을 충분히 살피지 못한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다음에 다시 배를 타게 된다면, 더 좋은 선실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배 안은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낮 시간이라 여유가 있었고, 여러 시설들을 이용하며 교우분들도 한결 편안해 보였습니다. 저에게는 그 시간, 기다리는 메일 하나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의 선정 결과를 알리는 메일이었지요. 그런데 바다 한가운데서 인터넷이 끊겨 한 시간가량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목포에 가까이 다가왔을 때, 인터넷에 다시 연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다리던 심사 결과를 받게 되었는데, 그 결과는 제가 바라던 것과 정반대였습니다. 실망스러운 마음을 안고 있는데, 마음속에서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가?”
“내 영혼아,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느냐?”
아마도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제가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일 바라는 결과, 곧 새로운 프로젝트의 시작이 결정되었다면, 저는 지금까지 가던 방향으로 계속 밀어붙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낙방하면서 오히려 삶의 방향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찰이 일어난 공간은 일상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인터넷이 끊긴 망망대해였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비일상적인 공간이 오히려 자신의 영혼을 대면하게 되는 카이로스의 순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2. 결핍이 만들어 낸 질문
저는 목회를 하며 ‘결핍이 축복’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을 때보다는 오히려 거절을 경험했을 때, 가장 깊은 물음을 품게 됩니다. 무언가가 다 채워져 있을 때는 묻지 않아도 될 질문들을, 결핍은 우리에게 끄집어내게 만듭니다. 평범할 때는 던지지 않을 보다 본질적인 질문이 바로 그 순간 튀어나옵니다.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는가?”
“내가 지금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심리학에서도 ‘창의성’은 종종 결핍에서 비롯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충분하고 안정된 상황보다는, 부족하고 갈급한 조건 속에서 인간은 놀라운 돌파력을 발휘합니다. 성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들은 하나같이 결핍된 이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도 우리는 결핍된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느낀 결핍을 함께 묵상해보려 합니다.
3. 재산을 나누어 달라고 말씀해 주세요
본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선생님, 제 형에게 유산을 나누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이 요청은 이 사람의 영혼을 붙들고 있던 실체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도 직접 요청할 정도였으니, 이 문제가 그에게 얼마나 절실한 일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요청은 당시 유대 사회의 맥락에서 보면 꽤 현실적이며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 시대에는 모든 권리가 장자에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장자가 거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고, 동생들은 형이 나눠주는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자매들은 상속에서 아예 배제되었고요. 그러니 장자가 아닌 남성과 여성들의 불편한 마음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형제가 아버지의 유산을 제대로 나누지 않거나, 동생의 몫을 무시하는 일은 당시에도 심각한 가족 갈등의 원인이었습니다. 그는 억울했고, 공정한 판결을 예수님께 요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치 찬물을 끼얹듯 말씀하십니다.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분배인으로 세웠느냐?”
사람들이 공정하게 유산을 나누는 일이 의미는 있겠지만, 예수님의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4. 동상이몽?
‘동상이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같이 자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이 왜 이 시점에서 등장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단순히 재산 분배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도에 대한 가르침의 일부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람들도 같은 꿈과 비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따라나선 이들 가운데 여전히 재산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몹시도 서운한 일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사람의 요청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인간의 개인사 해결로 축소하고 왜곡하려는 시도로 읽힐 수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슬퍼하실 일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몇 주 전, 마르다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펼쳐나가실 일인데, 자꾸 인간적인 일들로 인해 초점이 흐려지고 하나님의 일들이 뒤로 밀리는 셈입니다.
5. 나밖에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
이어서 예수님은 한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수확이 많아 창고에 곡식을 다 담을 수 없게 된 한 부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고민 끝에 더 큰 곳간을 짓고, 모든 것을 그 안에 쌓아 둡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이제는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자.”
여기엔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 곡식, 내 창고, 내 물건, 내 영혼…” 그 어떤 이웃도, 하나님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철저히 자신만을 위한 계획, 자신만을 위한 저장, 자신만을 위한 독백입니다.
만약 그가 그 큰 곳간을 이웃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준비했다면 어땠을까요? 그의 삶은 전혀 다른 질감으로 채워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밖에 모르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또 하나의 큰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렇게 충분히 물건을 저장하면, 자신의 영혼—곧 ‘내 영혼’도 안심하고 만족할 수 있으리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는 자기 영혼이 가진 것, 준비한 것, 쌓아둔 것에 따라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쌓아둔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그가 아무리 노후를 철저히 준비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오늘 그의 영혼을 부르신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6. 하나님께 인색한 삶
예수님은 이 비유의 결론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아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한 자는 이와 같으니라.”
그는 풍요로움을 자랑하면서, 그 풍요로움이 자신의 영혼을 만족시킬 것이라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재물을 쌓는 삶은, 곧 하나님께 인색한 삶이 될 수밖에 없다고요.
욥은 많은 재산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만을 위한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이었고,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부는 더 풍성하고 존경받는 삶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반면 이 부자는 자기만을 위해 재물을 쌓았고, 결국 하나님께 인색한 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인색하다’는 말은 단지 헌금이나 시간을 적게 드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서 제외한 삶, 하나님 없이 안심하려는 습관, 하나님 없이 미래를 설계하려는 태도 전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7. 다시 던지는 질문 – 내 영혼아, 어디로 향하고 있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영혼은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도 더 큰 창고를 짓고, 그 안에 많은 재산을 쌓아 두고, 그 풍요로움 속에서 ‘내 영혼’의 만족을 찾으려 하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혹은 자녀들의 미래를 준비한다는 이유로, 다른 방식으로 창고를 키우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아니면 그렇게 부유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며, 은연중에 부러움과 시기심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으신지요?
이 부자의 문제는 단지 재산이 많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공동체 없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이제는 안심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연약하고, 불안하며, 고통의 연속입니다. 그런 인생에서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길은 오직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을 때 가능합니다. 그 연결은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연결은 우리 재물에 대한 태도와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성경은 부자가 되는 것을 죄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구약에서는 부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부는 언제나 공동체를 위한 것이어야 했습니다. 성서 속 부유한 사람들은 모두 공동체의 아버지 역할을 했습니다.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살지 않았고, 자신들의 창고를 늘리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을 넓히고, 함께 여행하며 하나님을 따르는 삶에 헌신했습니다. 그 결과가 풍성함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8. 나누고, 비우고, 가벼워지는 삶
90년대 초에 큰 인기를 끌었던 책이 있습니다. 석용산이라는 승려가 쓴 『여보게, 저승갈 때 뭘 가지고 가지?』라는 책입니다. 그는 서울대 출신이라는 이력과 단정한 외모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죽음을 화두로 한 이 책을 통해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름도 학력도 가짜였고, 이 책으로 큰 인세와 명성을 얻은 그는 결국 재산 분쟁 속에 남겨졌습니다. 자신이 말했던 “무소유”의 가르침과는 달리, 그는 점점 더 창고를 키우고, 그 안에서 안락을 추구하는 ‘어리석은 부자’였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우리의 영혼의 행복은 재산의 많고 적음으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행복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납니다.
그래서 저는 주일예배를 소중히 여깁니다. 이 시간이 삶의 고정축이기 때문입니다.
그 고정축을 중심으로 모든 일상과 시간들을 다시 재배치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하나의 고정축은 바로 ‘참포도나무 신앙공동체’입니다. 저는 이 공동체를 제 삶의 기반으로 삼고, 제가 섬겨야 할 가족들로 품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주님은 저희 공동체를 더욱 더 풍성하게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중심의 삶’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점점 나누고, 비우고, 가벼워지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주님은 우리를 향해서 이렇게 물어보십니다. “내 영혼아, 어디로 향하고 있느냐?” 이 질문 앞에 다시 서십시오. 그리고 그 대답을 하나님 앞에서, 우리 공동체 안에서, 삶의 자리에서 새롭게 살아내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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