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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년 성탄절설교문 '텅빈 자리에서 먼저 들린 복음'
    설교 2025. 12. 25. 10:32

    설교 제목: 텅 빈 자리에서 먼저 들린 복음

    본문: 누가복음 28-2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성탄의 아침을 맞이한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시길 빕니다.

     

    우리는 요즘 너무 많은 것들을 소유하며 살아갑니다. 물건뿐만이 아니라 정보와 계획, 책임과 일정까지 우리의 삶은 늘 빽빽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달력을 봐도 빈칸을 찾기가 어렵고, 우리의 머릿속도 쉴 새 없는 생각들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가득 찬 삶 속에 과연 예수께서 들어오실 자리가 남아 있을까?’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우리는 더 분주해집니다. 예배를 기획하고, 성탄 트리를 장식하고, 선물을 고르며 완벽한 성탄절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토록 분주하게 무언가를 만들어내라고, ‘준비하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약속하신 그분을 잠잠히 믿고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기다리지 않고 준비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행사는 화려하고 형식은 완벽하게 갖추어졌는데, 정작 그분을 향한 간절한 기다림이라는 내용은 빠져버린 것은 아닐까요? 기다림이 사라진 준비는 오히려 소음이 되어, 주님이 오시는 발자국 소리를 듣지 못하게 만듭니다.

     

    첫 번째 성탄의 밤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베들레헴 성안은 호적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여관마다 사람들로 가득 찼고, 세상의 중심은 힘 있는 자들, 목소리 큰 자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삭의 마리아와 요셉이 들어갈 작은 하나조차 없었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그렇듯 너무나 꽉 차 있어서, 주님이 들어오실 틈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의 시선을 전혀 다른 곳으로 이끕니다. 성 안의 화려한 불빛이 아니라, 성 밖의 춥고 어두운 빈 들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그 텅 빈 자리에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목자들은 그 시대의 아웃사이더였습니다. 사람들이 편안히 잠든 밤에 깨어 있어야 했고, 거친 들판에서 추위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들은 사회의 안전한 중심부가 아니라, 도시와 광야가 맞닿은 위태로운 경계(Edge)’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이 목자들의 자리를 묵상하다가 함민복 시인의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

    등산지도에는 경계마다 붉은 줄이 그어져 있다

    그러나 그 경계가 막상 가보면 아무런 줄도 없이

    꽃이 핀다

    눈물과 웃음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시인의 통찰처럼, 꽃은 잘 가꾸어진 화단 중앙이 아니라 흙과 돌이 부딪치는 경계, 물과 뭍이 만나는 그 가장자리에서 피어납니다. 구원의 꽃도 베들레헴 성 밖, 춥고 외로운 경계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목자들의 빈 들에서 가장 먼저 피어났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본문의 핵심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천군 천사들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14)

     

    이 문장은 너무나 익숙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묻지 않고 지나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문장이야말로 성탄절의 핵심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 문장은 우리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끕니다. “도대체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우리는 흔히 착한 사람, 신앙생활을 완벽하게 준비한 사람, 소위 자격 있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누가는 그 방향으로 우리를 데려가지 않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대단한 준비를 마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무런 준비 없이, 그저 삶의 가장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목자들이었습니다.

     

    성서 본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기쁨은 행위나 자격에 대한 보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쁨이 머물 수 있는 상태’, 빈 마음을 의미합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이것을 일컬어 거룩한 비움(Sacred Vacant)’이라 말했습니다.

     

    목자들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비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삶이 그들을 비워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바로 그 비어있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 하나님의 기쁨이 머문다고 선포합니다.

     

    그 증거가 바로 구유입니다. 천사는 표징으로 구유를 보여줍니다. 구유가 무엇입니까? 짐승의 밥을 담는 빈 통입니다. 예수님은 왕궁의 화려한 요람이 아니라, 비어 있는 여물통에 오셨습니다. 가장 낮은 자들이 가장 낮은 자리에 오신 왕을 만난 것입니다. 이처럼 성탄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텅 빈 자리를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말씀을 듣고 아기 예수를 만난 뒤, 목자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20절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돌아갔다고 기록합니다. 어디로 돌아갔을까요? 다시 그 양 떼가 있는 춥고 배고픈 빈 들입니다. 상황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밤이었고, 여전히 가난한 목자였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더 이상 비어있지 않았습니다. 전에는 적막과 외로움이 감돌던 들판이었지만, 이제 그들의 입술에는 찬송이, 그들의 가슴에는 구주를 만난 확신이 가득 찼습니다. 삶의 조건이 바뀐 것이 아니라, 삶을 채우고 있는 내용이 바뀐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첫번째 크리스마스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참포도나무교회 성도 여러분, 성탄의 아침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어떻게 내 욕심을 비워낼까?”라고 묻지 마십시오. 우리의 의지로 비워내는 것은 또 하나의 성취가 되어 우리를 교만하게 할 뿐입니다. 대신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내 삶에서 이미 비어 있는 자리는 어디인가?”

     

    어쩌면 여러분 중에 누군가는 상실의 아픔으로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 있을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혹은 설명할 수 없는 외로움으로 삶의 경계에 서 있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세상은 그 빈자리를 실패라고 부르지만, 성경은 바로 그 자리가 예수께서 태어나실 자리라고 말합니다. 모든 경계에서 꽃이 피듯, 여러분의 그 텅 빈 경계에서 구원의 꽃이 피어날 것입니다.

     

    성탄의 복음은 우리의 가득 찬 성공을 장식하기 위해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내 힘으로 붙들 수 없게 된 그 빈자리, 그 텅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이 구유처럼 비천하고 비어 있더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바로 그 빈 마음에 생명의 빵으로 담기기 위해 오셨습니다.

     

    오늘 이렇게 칠흑과 같이 어두운 밤, 분주한 준비를 멈추고 잠잠히 주님을 기다리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화려한 장식이 아니라 우리의 텅 빈 마음을 주님께 내어 드립시다. 텅 빈 들판의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기쁜 소식이 임했던 것처럼, 삶의 경계에 서 있는 여러분에게 아기 예수님의 평화가 가장 먼저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언제부터인지 제 눈에는 교우들과 사람들의 텅 빈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텅 빈 마음을 채워달라고 기도를 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 텅 빈 마음을 바라봅니다. 또한 제 삶에 있는 텅 빈 공간을 봅니다.

     

    그곳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그 텅 빈 공간을 향하고, 그곳에 머물려고 힘을 씁니다.

     

    텅 빈 자리에서 먼저 들린 복음. 그 자리가 오늘 우리의 자리가 되기를, 그곳에서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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