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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의 도
누가복음 10:1~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상반기를 돌아보는 이 거룩한 시간에,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한 가지 깊은 질문을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추수를 기다리는 곡식일까요, 아니면 추수하는 일꾼일까요? 혹시 그저 구경꾼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요?
헨리 나우엔이 말했듯이, 우리는 모두 '상처받은 치유자'입니다. 완전하지 않은 채로, 여전히 길을 찾아가는 중에도 다른 이들과 함께 걸어가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의 도가 아닐까 합니다.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깊은 탄식을 하십니다.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됩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무리들 가운데, 제자들 가운데 계셨지만 때로는 한없이 외로우셨던 것 같습니다.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하신 말씀이 단순히 물리적인 거처의 부족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영적으로 깊이 교감할 수 있는 사람들의 부족, 진정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부족을 한탄하시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문제는 그때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은데 그 일을 감당할 일꾼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여러분, 제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십니까? 바로 이 일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백성이라는 특권만 누리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일꾼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감당할 일꾼은 언제나 부족합니다. 제자의 도는 바로 이 현실을 똑바로 직면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누군가 하겠지'라는 방관자적 태도가 아니라 '제가 하겠습니다'라는 적극적인 응답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현대적 착각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어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지,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할지, 어떤 옷을 입을지, 심지어 어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지까지. 모든 것이 우리의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됩니다.
이런 선택의 자유가 과연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만들어주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우리를 더 큰 불안 속으로 밀어넣은 것 같습니다. 더 좋은 것, 더 완벽한 것을 끊임없이 찾아 헤매며 정작 지금 여기에 주어진 은혜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당신이 당신 삶의 주인입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사십시오. 당신 자신을 믿으십시오.”“당신은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한 것이 여러분의 미래를 결정지어줄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 문명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가장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선택의 주체성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겠다고 결단하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굴복이나 포기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입니다. 이것은 해방입니다. 끝없는 선택의 피로감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찾는 길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평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교회쇼핑이라는 현대적 우상숭배
가끔 사람들이 다닐 만한 교회를 추천해 달라는 이야기를 듣거나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의 말이 저에게는 이렇게 들립니다.
"목사님, 설교가 감동적이고 찬양이 은혜로운 교회 좀 추천해주세요. 아이들 프로그램도 좋고 주차장도 넓은 교회 말입니다.”저는 그런 말들을 듣게 되면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집니다.
언제부터 우리는 교회를 마치 백화점에서 쇼핑하듯 선택하게 되었을까요? 내 필요와 취향에 맞는 상품을 고르듯 교회를 선택하고, 만족스럽지 않으면 언제든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소비자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목사님 설교가 재미있는 교회 어디 없을까요?"
"찬양이 정말 감동적인 교회 추천해주세요."
"양육 프로그램이 체계적인 교회를 찾고 있어요."
이런 질문들을 들을 때마다 저는 깊은 우려를 느낍니다. 이것은 신앙이 아니라 종교적 소비주의입니다. 이런 태도로는 결코 참된 신앙의 성숙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제자는 자신이 원하는 곳을 선택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자리에서, 그 사람들과 함께 평화를 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곳에서 그분의 음성을 듣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편한 자리, 달콤한 말씀만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이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과연 나는 내가 편한 자리에만 머물려고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그 자리에서 충실히 섬기려고 하는가?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는 역설적 명령
"전대도 자루도 신발도 가져가지 말고”
이 예수님의 명령은 현대인인 우리에게 매우 당혹스럽게 들립니다. 준비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것이 우리의 본능 아닌가요? 보험도 들어야 하고, 비상금도 모아야 하고, 플랜 B도 준비해둬야 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배워왔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 명령 속에는 깊은 영성의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진정한 안전감은 우리가 준비한 것들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토마스 머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할 때 모든 것을 주십니다.”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는 것은 궁핍하게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진정한 풍요로움이 어디서 오는지를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준비와 계획에 의존할 때, 우리는 실제로는 하나님보다 우리 자신을 더 신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의 도는 철저한 하나님 의존입니다. 주님께서 시작하신 일이니, 주님께서 책임지시고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우리의 경험으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앙은 경험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고,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길에서 인사하지 말라는 집중의 영성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
이 말씀도 처음에는 인정머리 없는 명령처럼 들립니다. 인사는 기본 예의 아닌가요? 특히 우리 한국 문화에서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큰 실례가 아닙니까?
하지만 깊이 묵상해보니, 이는 집중에 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 인사는 단순한 목례가 아니었습니다. 긴 시간의 사교와 환대, 식사와 대화를 의미했습니다. 한번 인사를 시작하면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주어진 사명에서 산만해지지 말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지금 주어진 가장 중요한 일에서 주의가 분산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는 얼마나 절실한 가르침입니까? 스마트폰 알림, SNS, 끝없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온갖 부차적인 일들에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정작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도 왕의 사자가 급한 사명을 띠고 갈 때, 누구와도 인사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곤 했습니다. 이는 주어진 일에만 집중하고, 다른 것에 흔들리지 말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길에서 인사하지 말라"는 말씀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다가 정작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평화를 전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하고 말하라”
이 인사말을 묵상하며 저는 제 자신을 깊이 돌아보게 됩니다. 과연 저는 어디를 가든 평화를 가져다주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불안과 긴장을 가져다주는 사람일까요?
평화를 전한다는 것은 단순히 좋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존재 자체가 평화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의 평화 안에 거해야, 그 평화가 다른 이들에게로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직하게 고백하자면, 저는 여전히 평화롭지 못한 사람입니다. 작은 일에도 쉽게 동요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쉽게 흔들립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평화를 전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저는 깨닫게 됩니다. 제자의 도는 완전해진 후에 걷는 길이 아니라, 불완전한 채로 걸어가며 완전해져 가는 길이라는 것을. 헨리 나우엔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모두 '상처받은 치유자'로서 함께 걸어가는 것이 제자의 도라는 것을 말입니다.
완벽한 평화를 소유한 사람만이 평화를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 평화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도 평화를 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평화는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지 말라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지 말라"
이 말씀은 현대인인 우리에게 특별한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더 좋은 조건, 더 편한 환경을 찾아 끊임없이 옮겨 다니며 살아갑니다.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동네,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교회를 찾아서 말입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제자의 도는 주어진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이라고. 완벽한 조건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나누는 것이라고.
저는 문득 깨닫게 됩니다. 제가 지금까지 찾아 헤맨 "더 좋은 곳"이란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나님의 나라는 조건이 완벽할 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살기로 결단할 때 임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고 말하라"
제자는 단순히 평화의 인사만 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아픈 사람들을 돌보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여기에 임했음을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행동으로 복음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진짜 제자의 모습입니다. 완벽한 곳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사람. 이론이 아니라 삶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라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청하라”
일꾼이 부족한 이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 먼저 기도를 명하십니다. 이 일은 우리의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영성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제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언가를 실행하기 이전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함께 할 일꾼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 바로 그것이 참된 제자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기도보다는 행동을 먼저 하려고 합니다. 무언가 구체적인 일을 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정반대로 가르치십니다. 먼저 기도하라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기도는 일의 부록이 아닙니다. 기도 자체가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되고, 하나님의 방법을 배우게 되며,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여기서 시작되는 순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자의 도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완벽해진 후에 걷는 길이 아니라, 불완전한 채로 시작하는 순례입니다.
헨리 나우엔의 말을 빌어서 말하자면, "영적 여정은 집에서 집으로 가는 여행입니다." 우리는 모두 고향을 떠나 또 다른 고향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들입니다. 그 길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과 평화를 나누며, 함께 걸어가는 것이 제자의 도입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주어진 "어느 집"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 여러분의 직장, 여러분의 학교,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가 바로 그곳입니다. 더 좋은 곳을 찾아 헤매지 마십시오. 지금 그곳에서 평화를 전하십시오. 그곳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음을 선포하십시오.
그 길이 때로는 좁고 외로워 보일지라도, 그 길 위에서 여러분은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기다리고 계실 주님을 생각하며 오늘도 한 걸음씩 내디디시기 바랍니다.
이 맥추감사주일에,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이 제자의 도를 마음에 새기고, 그 길을 함께 걸어가기로 결단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 길에서 참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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