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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식을 향한 순례
    카테고리 없음 2026. 8. 4. 08:33

    2026. 8. 4. (화)
    산책기도
    안식을 향한 순례

    오늘 함께 걸으며 묵상할 말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있다.”
       (마태복음 18:20, 새번역)

    아브라함 헤셸은 『안식』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가장 먼저 거룩하게 하신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먼저 거룩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거룩한 장소를 찾아가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시간을 살아가는 데서 시작됩니다.

    헤셸은 우리의 삶을 안식을 향한 순례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한 주를 살아가며 안식일을 기다리고, 안식일을 살아가며 영원한 안식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모든 시간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안식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순례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안식을 공동체 안에서 완성하십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더 이상 특정한 건물 안에만 두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이름으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공간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헤셸이 거룩한 시간을 이야기했다면, 예수님께서는 그 거룩한 시간이 사람들의 관계 안에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간다는 사실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공동체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공동체일까요?

    저는 마태복음 18장을 읽을 때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하셨던 이야기들이 떠오릅니다. 길을 잃은 한 사람을 끝까지 찾아가라는 말씀, 형제를 얻기 위해 먼저 찾아가라는 말씀, 그리고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은 결국 예수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참 어렵습니다.

    함께 신앙생활을 오래 한다고 해서 저절로 사랑이 깊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에 대한 기대도 커집니다. 그리고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으면 서운함이 쌓이고, 마음속에는 오래된 앙금이 남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뿌리에는 완벽주의가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완벽주의는 다른 사람을 먼저 힘들게 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힘들게 합니다. 조금만 부족해도 자신을 책망하고, 작은 실수도 쉽게 용납하지 못합니다. 늘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마음에 안식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을 대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대합니다.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엄격해지고, 자신을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쉽게 용서하지 못합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조금만 더 달라졌으면 좋겠다.’,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내려놓지 못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전혀 다른 곳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완벽한 사람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의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세리 마태도, 충동적인 베드로도, 의심 많은 도마도 먼저 받아들이셨습니다. 변화된 뒤에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하셨기에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사랑은 상대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잘못을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내 손에서 내려놓는다는 뜻입니다. 변화는 하나님의 일이고, 사랑은 우리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외면하지 않으셨지만, 죄 때문에 우리를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를 받아들이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자기 자신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안식을 향한 순례는 먼 길을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완벽해야 한다는 짐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나를 심판하는 일을 멈추고,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일도 멈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듯이, 한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품어 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의 임재는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며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 가운데 머무릅니다.

    그곳이 안식의 공간이고, 하나님 나라를 미리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오늘의 질문

    1.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받아 주셨다는 사실보다, 여전히 내 부족함을 더 크게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2.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바꾸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맡기고 있습니까?
    3. 오늘 나는 한 사람에게 안식이 되어 줄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저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셨습니다.

    제가 완전해졌기 때문에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하셨기에 저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잊지 않게 하시고, 저 자신에게도 그 은혜를 적용하게 하옵소서.

    완벽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하시고, 제 부족함 속에서도 저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시선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또한 다른 사람을 제 기준으로 바꾸려 하기보다, 있는 모습 그대로 품어 주는 사랑을 배우게 하시고, 그 변화는 주님의 손에 맡길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서로를 심판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에게 안식이 되어 주는 공동체가 되게 하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함께하는 모든 시간과 공간 속에 주님의 임재가 머물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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