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에 마시는 커피 15, 아직도 내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_핸드드립, 기다림의 미학
커피에는 빠름과 느림의 문화가 공존합니다. 에스프레소*가 빠름의 문화라면, 사람의 손으로 물을 부어서 내려 마시는 핸드드립은 느림과 기다림의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스프레소는 25-30초 사이의 짧은 시간동안, 추출이 끝나는 것에 반하여, 핸드드립의 경우는 서버에 따라서 3분에서 5분까지도 걸립니다. 고노드립퍼를 사용하여 점드립을 하게 되면, 커피 한잔을 내리는데 4-5분이 걸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이유는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릴 때, 바로 다음 수순을 밟을 수 없고, 적당한 시기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물의 온도인데, 전기포트를 사용할 경우 팔팔 끓는 물의 온도는 거의 100-95도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뜨거운 물을 사용해서 드립을 하게 되면, 커피가 가지고 있는 맛이 대부분 사라지고, 쓴맛만 남게 됩니다. 때문에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릴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의 온도가 90-85도 사이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저는 87도를 기준점으로 삼는데, 바디감이 좋고 스파이시한 커피를 내릴 때는 89도 정도, 상큼한 신맛과 함께 풍부한 아로마 향을 강조하고자 할 때는 87-85도 사이에서 드립을 시작합니다. 물의 온도가 어느 지점에서 시작하느냐에 따라서 커피의 맛은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바리스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적당한 물의 온도가 어느점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딱 정할 수 없는데, 원두에 따라서 온도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다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커피전문점에 가면, 바리스타들이 양손에 주전자를 들고서 물을 한 주전자에서 다른 주전자로 옮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한번 옮길 때마다, 공기와의 접촉과 주전자의 온도차이로 인해서 약5도씨 정도 온도가 떨어지게 됩니다. 적당한 온도를 맞추기 위해서 바리스타들이 이와 같이 하는 것입니다. 저도 가끔 바쁠 때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물의 온도를 맞추지만, 뜨거운 물을 붙고, 적정온도에 이르기 까지 그냥 기다립니다. 다른 어떤 조건을 가하지 않고 그냥 물이 식어가는 모습을 관찰합니다. 그리고 온도계가 87도에 가까이 오면, 주전자를 들고 드립을 시작합니다. 바리스타들이 동포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온도의 변화가 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테인레스주전자로 드립을 할 경우 처음 드립을 시작할 때와 마지막의 편차가 심하게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전자의 성질을 잘 이해하고 드립을 하게 되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바리스타의 의도에 커피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물과 커피의 상태를 기다리며 그에 맞추어나가는 태도말입니다.
_아직도 내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한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잔치에서 가장 중요한 포도주가 바닥이 난 것입니다. 그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할지 몰라서 발을 동동구르고 있었는데, 예수의 모친이 예수께 와서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합니다.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예수가 좀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는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 후에 예수는 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만, 예수는 그의 모친에게 "아직도 내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다소 매몰차게 말합니다.
신앙은 때를 아는 힘입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습니다.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고생할 때가 있는가 하면, 기뻐할 때가 있습니다. 인생이 너무 힘들어서 이 고통이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어느새 그랬냐는 듯이 인생의 햇볕이 비출 때도 있습니다. 주님의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시간을 분별하는 것이였습니다. 당신의 모든 사역이 십자가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탄생에서 부터 성장, 공생애, 제자들과의 교제와 교육 그리고 마지막 십자가를 지심까지 그 시간이 하나님이 정하신 그 순서에 정확하게 맞추어서 진행됨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간이 아닌, 주님의 시간, 하나님의 시간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있는 태도 또한 필요합니다. 주님의 시간에 모든 것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_커피묵상
주님 사순절을 맞이하여 "아직도 내 때가 오지 않았다"는 당신의 말씀을 묵상해봅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하는 우리네 삶 속에서도 여전히 시간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 '나'를 봅니다.
주님의 시간이 아니라, 나의 시간과 계획 속에 당신을 맞추려 한 적도 많이 있습니다.
당신은 아직도 뜨거운 시간을 지나고 있는데, 우리는 아랑곳 하지 않고,
다음 수순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진득하게 머물면서 당신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우리 안에 기다림은 없고 오히려 분주함만이 가득합니다.
모세의 고백과 같이 화살같이 빠르게 날아가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네 삶이 당신이 원하시는 그 시간에 쓰임 받길 원합니다.
그 때까지 움직이지 말고, 호흡을 멈추고 오직 그 시간만을 기다리게 하소서
그렇게 당신의 은총의 시간을 기대하고 기다리게 하소서.
그 시간에 모든 것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아멘.
* 급행열차라는 의미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