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가 기적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
2024년 9월 8일 성령강림 후 제 16주, 교회연합주일 / 기독교대한감리회 참포도나무교회 설교문
설교본문 : 마가복음 7:24~37 / 다함께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여러분들의 삶이 이 예배를 통해서 더욱 더 하나님의 은총을 알아 가시는 통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오늘 새롭게 시작하는 ‘참포도나무성가대’의 대원들과 성가대단장님 위에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서에는 한 여인이 기적을 경험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이 이야기를 조용한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 가운데 어떤 이가 기적의 주인공이 될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한계에 직면한 여인
오늘 기적의 주인공은 한계에 직면했습니다. 오늘 성서는 그녀를 시로페니키아 출생의 이방인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로페니키아는 이전에는 ‘가나안 사람들’이라고 부르던 지역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잠시 휴식을 취하시려고 했습니다. 주님은 그곳에서 ‘조용히 계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러한 의도는 한 여인에 의해서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딸이 있었는데 그 딸에게 마귀가 씌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에게 마귀를 쫓아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경계를 넘은 사람들의 대화
제가 미리 말씀을 드렸지만 그녀는 시로페니키아 출생의 이방인이었고 여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악령에 들린 어린 딸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마 많은 노력을 다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윽고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이 오신 것을 알아내고 조용히 지내시려고 하시던 예수님을 찾아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는 대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아예 대화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경계를 넘어서 예수님에게 나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그녀는 말하자면 경계를 넘어서서 예수님께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평범한 유대인들이었다면 그 지역으로 가서 쉬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경계를 넘어서 두로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바로 이 여인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사실 기적은 이미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눈치 챌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설교제목은 ‘어떤 이가 기적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기적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그어놓은 경계를 넘은 사람들을 통해서 일어나게 된 사건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경계를 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포기할 줄 모르는 믿음
그런데 그녀는 경계를 넘어서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한발자국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예수에게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그 간청은 거절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녀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먹는 빵을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매정하게 말씀을 했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 부분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이곳으로 오신 이유가 전도 여행이 아니라, 잠시 동안 몸을 피신하신 여행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곳에 일을 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고 그리고 그 가운데서 재정비를 하시고자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해를 할 법도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에는 예수님의 표현은 수위를 넘은 것 같습니다. 그녀를 강아지에 비교를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그런 말을 들었다면 예수님께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성은 실망하거나 절망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포기할 줄 몰랐습니다. 그녀의 대답은 우리를 더욱 더 놀라게 만듭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그렇긴 합니다만 상 밑에 있는 강아지도 아이들이 먹다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얻어먹지 않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서 그녀는 강아지와 같은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을 더 낮춰서 자신을 ‘상 밑에 있는 강아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낮출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녀의 상황이 절대적으로 예수님의 개입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마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사의 노력을 다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다소 무례한 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은 그녀에게는 그보다 더 큰 고통이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에게 매달렸던 것입니다. 그녀는 그렇게 포기할 줄 모르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그 포기할 줄 모르는 믿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옳은 말이다. 어서 돌아가 보아라. 마귀는 네 딸에게서 떠나갔다”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우리들에게는 기적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적이 일어난 것은 바로 그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왔기 때문이고 예수님의 능력이 기적을 일으킨 것이겠지만, 그 안에는 포기할 줄 모르는 믿음을 가졌던 한 여인의 믿음이 있었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난 주 은행을 다녀오면서 시 한편이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도종환 시인의 시인데요, 제가 산책기도에 여러분에게 공유를 했던 <담쟁이>란 시입니다. 오늘의 말씀과도 어울려서 한번 읽어보려고 합니다.
담쟁이 /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만일 이 여성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망해서 예수님을 떠났다면 그녀의 삶에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예수님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붙잡은 그 순간 그녀는 담쟁이와 같이 불가능해 보이는 절망의 벽을 넘어서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그 자녀의 삶에도 동시에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믿음, 포기할 줄 모르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구원하러 오시는 하나님
그런데 만약 우리들의 믿음이 여기에서만 머무른다면 신앙은 인간의 태도와 결단으로만 머무를 것입니다. 그녀도 그랬을까요? 그녀가 자신의 삶을 바꾸게 한 것이 그렇게 긍정적인 삶의 태도와 포기할 줄 모르는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믿음은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자기개발 서적과 같은 삶의 조언을 뛰어넘는 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기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여성, 절대로 포기할 줄 모르는 여인은 사실은 예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있던 믿음의 여성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제1독서로 읽은 이사야서는 하나님께서 복수하러 오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이 왜 복수를 하십니까?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자녀들의 원수를 갚으시는 분이시고 그래서 하나님의 복수가 곧 그들의 구원이 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이사야 선지자는 복수하시러 오시는 하나님에게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현실의 삶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 마귀에 눌림을 받고 고통받는 이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다시 오실 것을 그들은 믿고 또 믿었던 것입니다. 바로 메시야의 도래를 기대한 것입니다. 이 여성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흔들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나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주 믿음을 우리의 성취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유산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이미 그 구원을 받았다고 착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삶에는 여전히 빈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삶에는 저 시로페니키아 여성의 삶처럼 처참한 고통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이 바로 우리에게 있지 않고 예수님에게 있음을 믿습니다. 그분의 도우심을 통해서 우리는 이 고통스러운 삶 가운데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을 격려하라! (치유의 공동체)
저는 교회는 바로 이렇게 삶의 어려움을 만난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공동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설교를 듣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몸과 보혈에 참여하기 위해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저는 지난주에 성찬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 가운데 성찬의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비어 있던 성찬 테이블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보혈로 채워지고 그것을 믿음으로 고백을 한 신앙의 공동체가 함께 나누고 그 사건을 통해서 한 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찬에서 남은 모든 부스러기를 집례자가 마시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만찬의 비밀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읽는 가운데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식탁위에 놓인 빵이 아니라, 빵 부스러기라도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주변에 그런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서 외로운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귀신 들린 것처럼 자신들의 삶에 상처를 내면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아이들도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인해서 스스로를 자학하면서 한탄하면서 살아가는 이웃들과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작은 믿음이라도 나누길 바랍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시로페니키아 여성과 그녀의 자녀를 치유했듯이 서로 서로 치유하는 공동체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
주님, 오늘 우리에게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믿음을 가지게 하소서. 자신을 가두고 있는 견고한 경계를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소서. 우리로 하여금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갖도록 하소서. 그리고 우리 삶에 아직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직면하게 하시고 삶의 문제를 치유해 가는 이들이 되게 하소서. 그 가운데 우리를 위해서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고 고백하는 이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https://www.youtube.com/live/PGgBR-6n5Qs?si=dc6COe9CzMaroQ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