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의 기도 / 성서에 나타난 기도 (김영운 목사)/ 낭독과 해설 : 안준호 목사 (참포도나무교회)
순결의 기도 / 성서에 나타난 기도 (김영운 목사) / 낭독과 해설 : 안준호 목사 (참포도나무교회)
성서에 나타난 기도를 연구한다는 것은 본래부터 성서연구와 기도가 밀접하게 맺어진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여러 가지로 설명되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는 성서에 나타난 어떤 기도를 살펴 보든 간에 그 기도가 담겨져 있는 본문을 살피는 데서 시작할 뿐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삼아서 오늘 우리의 상황으로 연결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특히 베드로 전서는 일종의 박해 문서, 즉 박해를 받고 있는 신자들을 향하여 쓴 편지로서, 신앙이 위기 속에 빠져드는 시대와 상황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안겨준다.
다시 말하자면, 베드로 전서가 기록되던 상황, 그리고 특히 베드로전서를 처음 받아서 읽던 신자들이 처해 있던 상황이 비슷할수록 베드로 전서가 지닌 의미는 더욱 생생하게 되살아나서 강력한 의미를 던져 준다는 말이 된다. 이런 뜻에서 베드로가 기도에 대한 권면을 한 것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뜻으로 되살아날까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성서에 나타난 기도들을 통해서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를 배운다. 우선 신약에서 몇 가지 예를 찾아보자. 심령으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理性)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고린도전서 14:13~15)을 배우게 되고, 쉬지 말고 꾸준히 기도할 것(로마서 12:12, 데살로니가전서 5:17, 누가 18:1, 디모데전서 5:5등). 배우며, 항상 서로를 위해 기도할 것(로마서 1:9, 4:3, 히브리서 13:18)을 배우며, 성령으로 성령 안에서 기도할 것(에베소서 6:18, 유다서 1:20)을 배우며, 감사함으로 기도할 것(빌립보서 1:3, 4:6, 디모데전서 2:1)을 배우게 된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기도 외에 베드로는 순결의 마음과 삶의 기도(베드로전서 4:7~11)에 대한 말씀을 한다. 이것은 신약 여러 곳에서 살펴볼 수 있었던 여러 가지 기도를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점부터 뭔가 박해 받는 사람들에게 권면하는 뜻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에서도 살펴보았지만, 과연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하는 문제는 사실상 마음 밑바탕에서 기도하는 자세가 어떤 것이냐 하는 데 따라 좌우되며 또 거기서 시작된다. 모든 행동과 표현이 마음이 움직이는 데 따라 결정되듯이, 우선 기도의 자세에 있어서도 마음의 자세가 제일 중요하다. 이를 내용적으로 살피자면 경외심 곧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있어야 하며,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마음과 특히 이기심을 벗어난 마음이 있어야 한다. 베드로가 말씀하는 이 모든 태도는 (베드로전서 1:17~23) 한 마디로 믿음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기도와 삶을, 그리고 마음과 행동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데 이른다. 즉 기도자의 삶의 양식(樣式)이나 모습, 아니 그 삶 자체가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모인다. 특히 박해를 받고 신앙이 위협을 당하는 위기 속에서 삶이나 행동과는 동떨어진 기도, 즉 입으로나 글로만 그치는 기도야말로 거짓스러움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거짓스러운 기도가 아니라 과연 위기를 극복하며 승리할 수 있는 기도가 이루어질 것인가? 우리는 이제 베드로가 말씀하는 것을 통해 그 길을 찾아보자.
베드로전서 4:7의 말씀은 “세상의 종말이 가까웠으니 정신을 차려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하십시오”라고 권면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기도를 함으로써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아니다. 그와 정반대이다. 기도하기에 앞서서 우선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자신이 무슨 기도를 하는지도 모르고 감정에 치우쳐 외쳐대는 기도를 하거나 이성(理性)을 잃고 떠들어대는 기도를 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정신을 차린다는 말은 어떤 악의 세력이나 더러운 사상에 물들지 않은 맑은 정신을 지닌다는 뜻이 된다. 이 말은 거라사 지방에서 귀신들렸던 사람이 예수에게 고침을 받고 “멀쩡한 정신이 들었다”(마가복음 5:15)는 말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를 하되 우선 정신을 차리는 것이 앞서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을 다다듬어야 한다. 허황된 꿈이나 꾸면서 자신의 허영이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기도를 하는 것은 금물이다. 우리가 흔히 인간적으로도 어른 앞에 가서 뭔가 말씀을 아뢰어야 할 경우, 먼저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말씀을 드려야 함은 너무나 온당한 일이다. 하물며 마음을 가다듬지도 않고서야 어떻게 감히 하나님께 기도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베드로의 권면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기도하기에 앞서서 “정신을 차려 마음을 가다듬으라”고 하더니 이제는 다른 각도에서 더욱 강한 말씀을 한다. “모든 일에 앞서”라는 강력한 전제를 하고 나서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십시오”라고 권한다. 그러니까 서로 진정으로 열렬히 사랑하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주어지는 명령이다. 기도하는 일보다도, 그리고 기도하기 전에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는 것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이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생각해도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며, 마음을 가다듬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더욱이 기도를 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은 더욱 아니다. 이 모든 일의 중대성을 누구보다 인식하고 강조를 하면서도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도 긴박하게 요청되고 중요하기 때문에 “모든 일에 앞서”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만이 피차에 성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것이 진정한 기도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기도의 구체적 형태이며 표현이다. 사실상 기도가 믿음을 바탕으로 해서 나오는 표현이라고 한다면, 믿음은 또한 사랑으로 역사(役事)하고 표현되기 때문에(갈라디아서 5:6) 서로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열렬히 그리고 진정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준다(용서해 줍니다)”라는 말씀 속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용서를 강조하시던(마태복음 6:14~15) 바로 그 음성을 듣는 듯하다.
복음의 핵심이 용서에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허다한 죄를 용서해 주는 일이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임을 확신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서 구원된 것처럼 우리가 남을 용서하고 남의 허물을 덮어준다고 하는 일은 곧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서로 사랑함으로써 허다한 죄를 덮어주고 용서한다는 일이 가장 작은 일 같으면서도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남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이다. 그것도 할 수 없이 마지 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귀찮게 여기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남을 대접하는 것이다. 더욱이 “모두 나그네들이니”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로서 동정심(compassion)과 공감(empathy)을 바탕으로 서로를 대접한다고 하는 삶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전쟁이 나서 피난길에 올랐을 때를 연상하면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되는 것이 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모두가 피난길에 오른 나그네들이니 내것 네것 없이 서로 동정하게 되던 때가 있다. 그 때는 오로지 함께 살아남는 것, 그것만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그 밖의 모든 것은 이러나 저러나 큰 차이가 없었다.
전쟁 중에 불행히도 적군의 수중에서 따로 떨어져 고생하는 군인이나 요인을 조금도 귀찮게 여기지 않고 자기 집에 데려다 숨기고 상처가 났으면 치료해 주고 먹을 것을 주며 보호하는 모습들을 머리에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야 말로 위기 속에서 함께 생존하려는 사람들의 심정이 동정심과 공감으로 연결되는 것과 같이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 오는” 위기 속에서 같은 신앙으로, 같은 기도로, 같은 사랑으로 살아남아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려고 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서로를 극진히 대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은 바로 같은 정신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서만 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확신하게 된다.
그러니까 서로 사랑하고, 귀찮게 여기지 않고 서로 극진히 대접하고, 서로 용서하는 것이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난 때 그것은 “서로 남을 위해서 봉사”하는 일이 된다. 서로를 섬기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정신을 이어 받아 사는 것이요, 주님께서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라고 밝히셨던 것이다(마가 10:45).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사는 것이요, 이러한 삶이 구체적으로 표현될 때 서로 남을 위하여 섬기며 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을 섬기는 일이야 말로 가장 구체적인 기도라 하겠다.
바로 이와 같은 구체적인 기도가 필요한 때가 지금이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웠다”고 하는 말이 의미하듯이 신앙과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 위기에 빠져 있는 지금에야 말로 “순결한 마음의 기도”와 “순결한 삶의 기도”가 강력하게 요청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순결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너그럽게 남을 용서하며 사랑하며 섬기는 해맑은 정신의 응결 또는 결정(結晶)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권면한 기도는 한 마디로 표현 하자면, “순결의 기도”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천의 모든 삶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기도를 하는 것도, 사랑을 하는 것도, 봉사를 하는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이 기도가 사랑이나 봉사와 따로 떨어질 수 없다. 위기 속에서는 더욱 더 기도와 사랑과 봉사 사이에 조그마한 틈도 있을 수 없다. 이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신을 차려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해야 한다. 보통 습관적인 기도를 하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리고 “모든 일에 앞서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여야 하겠다. 이렇게 함으로써 위기에 처한 신앙인들에게 꼭 필요한 길을 제시한 사도 베드로의 가르침과 권면을 따라 마음과 몸으로 “순결의 기도”를 드려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