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찬미와 기도 그리고 말씀

자비가 심판을 이긴다

if i could 2023. 6. 15. 21:39

365일 찬기말 / 2023. 6. 16

자비가 심판을 이긴다

야고보서 2: 8~13

 

8 여러분이 성경을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으뜸가는 법을 지키면, 잘하는 일입니다. 9 그러나 여러분이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요, 여러분은 율법을 따라 범법자로 판정을 받게 됩니다. 10 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도 한 조목에서 실수하면, 전체를 범한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분이 또한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간음은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살인을 하면, 결국 그 사람은 율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12 여러분은, 자유를 주는 율법을 따라 앞으로 심판을 받을 각오로, 말도 그렇게 하고 행동도 그렇게 하십시오. 13 심판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기독교인들은 율법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은 유대교의 전통이라고 생각을 하고 믿음이 기독교적인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그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그 구원은 곧 죽은 뒤에 가게 되는 천국으로 한정짓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은 그 사람은 이제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말하고 새로운 삶과 책임이 주어졌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5:17~18) 예수님은 오히려 당신께서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율법, 곧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귀하게 생각하고 그 말씀을 교훈 삼아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는 차별하는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홀대를 당하고 부자들에게는 호의를 베푸는데 이런 일들이 스스로 경건하다고 하는 이들에게서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으뜸가는 법을 중요하게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대화하시면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사람들이 토라, 곧 교훈으로 받아서 그 말씀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여러분들이 사람을 차별해서 죄를 짓게 되면, 여러분은 율법을 따라서 범법자로 판정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야고보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유리한 대로 말씀을 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것이 쉽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따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는 것은 세상에 대해서는 죽고 이제는 예수로 인해서 새로운 생명을 살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예수를 믿는다고 자부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순종과 따름을 결단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모두를 귀하게 생각하고 그 말씀을 자신의 삶의 길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도 한 조목에 실수하게 되면 전체 율법을 범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야고보서는 지금 율법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을 언어로 규정하고 그 율법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적용을 했지만, 예수님은 율법주의자가 아니라, 율법이 가지고 있는 정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시키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차별하지 말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어기는 사람은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이 포함된 전체 율법을 어기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경건하다고 주장했던 이들이 차별을 했던 이유는 스스로의 판단과 심판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야고보는 오늘 우리들에게 여러분은, 자유를 주는 율법을 따라 앞으로 심판을 받을 각오로, 말도 그렇게 하고 행동도 그렇게 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자유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들의 자유를 위한 것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심판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하지만,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긴다고 말합니다.

 

오늘 야고보서는 우리들이 심판하는 이들이 되지 않고 스스로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이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차별을 할 수 있는 것은 자기들만의 기준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준을 통해서 심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심판하고 무자비하게 심판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어떻습니까? 자신들의 기준에 의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자비하게 굴고 부자들에게는 호의를 베푸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한계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오늘 우리에게 자비가 심판을 이긴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을 자신의 잣대로 판단, 심판하지 말고 자비를 베풀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쉽게 타인들을 심판하고 차별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기적인 마음에서 무리를 짓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으로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모든 이들을 사랑하시고 모든 이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의 자비의 마음을 배우고 그 마음을 살아내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하루라는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람들을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고 심판하고 차별합니다. 그런데 성서는 우리들에게 누구든지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하던지 심판을 받을 것을 각오하고 조심하라고 경계합니다. 주님 오늘 우리들에게 심판이 아니라, 자비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자비심을 본받아 모든 이들에게 자비로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자들이 되게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