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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 맨 처음 소망을 둔 사람설교 2024. 7. 15. 10:46
그리스도께 맨 처음 소망을 둔 사람
에베소서 1:3~14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들의 삶에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이제 날씨가 많이 더워졌습니다. 불볕더위와 열대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이 지치기 쉬운 계절입니다. 이런 때에 여러분 모두 믿음 가운데 더욱 굳건하게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에베소서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에베소서는 신약성서 가운데 조직신학에 가까운 서신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기독교신앙에 대해서 체계적인 정리가 돋보이는 서신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집필 시기도 신약성서 가운데 비교적 후대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서신은 대체로 편지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런데 에베소서는 공동서신의 성격이 더욱 더 강합니다. 한 교회에게 보낸 편지라기 보다는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 전체를 향한 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무엇보다 복음으로 시작한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요구로 인해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오로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시작된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처음 교회가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시간이 갈수록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공부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 이유는 사람은 자신이 아는 만큼 생각하게 되고, 또 아는 만큼 누리게 되고 아는 만큼 살게 됩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알지 못하면 생각할 수도, 누릴 수도 또 살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매 주일 마다 여러분에게 성서를 읽고 그 성서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이유도 바로 그 부분에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성서를 읽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느껴야 하며, 그 분의 계획을 다시금 일깨워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에베소서는 시작부터 인사말을 마치고 나서 본론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본론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입니다. 그것을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게 에베소서의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온갖 신령한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세상 창조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를 예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거저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모든 것을 돈으로 지불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모든 귀한 것을 거저 주셨으니 우리는 그 은혜 앞에 자복할 수 밖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신령한 복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에베소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우리는 구속을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용서를 받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주셨습니다. 또한 미리 세우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러니까, 용서 받은 자들로서, 지혜와 총명이 넘치며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알게 된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이 세상의 지혜를 깨달은 자들이며 그것을 인격적으로도 누리게 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젊었을 때는 이 본문을 읽어도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인생을 살다가 보니 이 것이야 말로 은총 중의 은총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쉽게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란
1.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이며
2. 하나님에게 택함을 받은 사람이고,
3. 거룩하고 흠이 없는 완전한 사람이며4.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5. 용서받은 자들이며
6. 우리의 삶에는 지혜와 총명함이 넘치고
7.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여기서 우리의 존재에 대해서 다섯가지로 말하고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신령한 복에 대해서는 지혜와 총명함이 넘치고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니 생각해 볼수록 우리 인생들이 누릴 수 있는 복 가운데 지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에베소서 1장에 나오는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복을 모두 누리게 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사실 교회는 여기서 복을 비는 수준에서 멈추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초대교회, 처음 교회에 대한 피상적인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초대교회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교회입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하나님이 세우신 공동체인데, 이 공동체를 바로 고난으로 인하여서 도망을 가는 가운데 생겨졌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들은 이 땅 위에서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서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이 땅 위의 복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땅 위에서는 누릴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자포자기할 수 있었을 것인데, 에베소서는 그들에게 이 서신서를 보내어서 격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현대기독교인들은 너무도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들 뿐만이 아니라, 교회들도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높은 교회의 십자가탑을 자랑하고, 마을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교회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편하게 사용하라고 엘리베이터까지 설치되어 있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한 교회는 대부분이 노인 성도들인데 이제 교인들은 교회에 자신들의 노후를 위해서 요양원 사역을 하라고 요구한다고 합니다. 물론 교회가 교우들을 살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왠지 교회가 교인들만을 위한 서비스장으로 바뀌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자세하게 살펴보면 현대교회는 점점 에베소서 1장에서 말한 그리스도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져 가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에베소서 1장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복과 지위에 대해서만 말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왜 그런 아름다운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설교는 그런 일에 대한 반성이고 되돌아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현상에 대해서 말할 것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는 성서를 통해서 아주 중요한 원리 하나를 다시금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어떤 해석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대단한 신학적인 지식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누구든지 이 성서를 진지하게 읽는다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민하신 분들이라면 제가 이 본문을 해설할 때 일부러 언급하지 않은 부분이 있음을 눈치채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주셨는데, 그 앞에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가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 반대로 말하자면 “그리스도 밖에” 있다면 그러한 신령한 복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기를 예정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우리로 하여금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아들 안에서” 용서를 받게 되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신비한 뜻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우리를 상속자로 삼으셨고, “그리스도 안에서”우리는 복음을 듣고 믿게 되었으며 약속하신 성령의 날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에베소서의 저자가 의도적이라고 할 정도로 “그리스도 안에서”를 빼지 않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할 것입니다.
특히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죽어서 천국을 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구원에 대해서 말할 때 제일 먼저 말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본문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용서받았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7절 말씀에 보면 “우리는 이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의 피로 구속 곧 죄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구속을 받았다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졌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는데 그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 모든 신령한 복들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용서함을 받은 이들에게 저절로 주어지는 것들임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에베소서 저자가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를 강조하는 이유는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를 빠뜨리게 되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귀한 선물도 아무리 고귀한 신령한 복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지 않는다면 이러한 선물들을 받을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것들이 바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때가 차면”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를 믿은 뒤에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고 상속자의 지위를 얻게 되며 우리는 용서를 받게되지만 그 신령한 은혜가 바로 실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시간들을 포함합니다. 지혜라는 것은 단순히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반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는 지식의 시대가 아니라, 지혜자를 요구하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드르륵청년센터’를 시작하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단순하게 삶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전승하는 모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에베소서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 맨 먼저 소망을 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표현이 참 마음에 듭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의 목표는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성서는 우리로 하여금 부자가 될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서는 우리로 하여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 목표를 에베소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참 이것이 놀랍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일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성서의 지혜는 그 자체로 진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인기 있는 찬양사역자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완벽한 찬양을 부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 사람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에베소서는 “그리스도께 맨 먼저 소망을 둔 우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참포도나무교회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2024년의 하반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올해를 어떻게 마감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시작하고 마무리를 지어야 하겠습니까? 성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단순하고 확실한 답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성서는 우리들에게 “그리스도께 맨 먼저 소망을 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삶의 계획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할 수도 있고, 새로운 단체를 설립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께 맨 먼저 소망을 두라”는 에베소서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잊지 않고 기쁨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상을 살아내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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