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절에 마시는 커피 9, 나를 감싸는 하나님Coffee Prayer 2011. 4. 12. 00:06
사람마다 잊지못할 순간들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잊지 못할 커피 한잔의 추억이 있습니다. 커피숍사역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은 후로는 짬이 있을 때마다 커피숍을 찾아 다녔습니다. 대부분 아내와 함께 다녔는데, 이날은 혼자서 커피숍을 찾았습니다. 이날 제가 찾은 커피숍은 강릉 테라로사 커피공장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외곽에 자리하고 있었고,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손님들이 많았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바리스타들의 모습을 살피기 쉬운 바에 앉아서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이 날의 커피는 아로마향이 가득하고, 잘 볶은 원두에서는 군고구마향 비슷한 맛이 나는 '예가체프'. 젊은 남자 바리스타가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려 주었는데, 향도 좋고 바디감도 훌륭하고, 마지막에는 상큼한 신맛과 단맛이 살짝 베어나왔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커피, 정성껏 내린 커피를 마시면 마음까지 상쾌해집니다. 바리스타와 잠깐 이야기를 나눈 뒤, 서둘러서 다시 평창을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저녁 열시정도가 되었을까? 차 안에는 저 혼자 뿐이였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만이 밤의 적막을 깨뜨리고 있었습니다. 대관령고개를 거의 다 오를 즈음에 갑자기 삼십분 전에 마셨던 커피향이 입안에서 부터 시작해서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습니다. 그 향이 어찌나 진하게 울려퍼지는지, 순식간에 온몸을 휘감고, 제 마음을 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맛있는 커피, 잘 내린 커피는 이렇게 마시고 난 뒤에도 진한 향이 베어나옵니다. 커피 매니아들은 이 때, 행복을 느낍니다. 그 때 갑자기 눈물이 툭하고 쏟아졌습니다. 왜 눈물이 터졌는지는 알수 없지만, 지나온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한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저는 이날 오는 내내 눈물을 흘렸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바로 이 날의 경험이 저를 바리스타로 만든 것 같습니다. 이 날의 눈물은 정화의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바탕 실컷 울고 나니까,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충분히 할 수 있어", "힘을 내자"이런 말들이 마음속에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커피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커피숍 공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날 제 마음을 감싸주었던 것이 단지 커피향만은 아니였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날 저를 감싸주었던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 시간에도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 나를 끌어안고, 감싸고 내가 말하는데 계시며,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께서 그 날 저와 함께 하시고, 사랑의 두팔로 감싸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나를 감싸고 계십니다. 저는 지금도 혼자 커피를 마실 때면, 대관령 도로 위에서 저를 포근하게 감싸주었던 그 순간을 떠올리곤 합니다. 따뜻한 커피에는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커피마을 숲지기>
나를 끌어안고,
나를 감싸는 하나님,
내가 말하는 데 계시며,
내가 생각하는 데 계시는 하나님.
내가 잠자는 데 계시며,
내가 깨어 있는 데 계시며,
내가 바라보는 데 계시며,
내가 희망하는 데 계시는 하나님.
나의 생명에,
나의 입술에,
나의 영혼에,
나의 마음에 계시는 하나님
나의 풍족함 안에 계시며,
내가 선잠 자는 데 계시는 하나님,
영원히 사는 나의 영 가운데 계신 하나님,
나의 영원성 안에 계신 하나님.* Carmina Gadelica 73p <켈트 영성 이야기>
'Coffee Pray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순절에 마시는 커피 12, 카페가 교회로 들어왔다 (0) 2011.04.13 사순절에 마시는 커피 11, 커피 한잔이 주는 친밀함 (0) 2011.04.12 사순절에 마시는 커피 8, 커피를 내리다 (0) 2011.04.12 사순절에 마시는 커피 7, 마실 때 마다 나를 기억하라 (0) 2011.04.11 사순절에 마시는 커피 6, 쉽고도 어려운 길 (0) 2011.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