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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웃과 함께 하는 기도 / 성서에 나타난 기도 (김영운 목사) / 낭독 및 해설 : 안준호 목사 (참포도나무교회)
    낭독기도회 2023. 6. 21. 18:25

    이웃과 함께 하는 기도 / 성서에 나타난 기도 (김영운 목사) / 낭독 및 해설 : 안준호 목사 (참포도나무교회)

     

    여러분 중에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기도하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은 찬송하시오”(야고보 5:13). 고난 중에 기도하고 기쁨 속에서는 찬송을 한다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처럼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흔히 관념적인 생각 속에서만 쉬운 일이다. 실제 생활 속에서는 이것이 참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삶을 잠시라도 성찰(省察)해 보면 쉽게 공감할 수 있을 줄 안다.

     

    고난 중에 기도하고 기쁨 가운데서 찬양하라는 극히 평범한 것 같은 이 말을 누가 하였는가를 생각하면, 우리는 같은 말 속에서도 색다른 뜻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주님 예수의 형제 야고보는 인간으로서의 친형인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 아마 우리보다도 더 어려웠을지 모르겠다. 예수가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며 말씀을 전하러 다니실 때 율법학자 같은 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바알세불이 들렸다 혹은 미쳤다 하는 소문을 퍼뜨리니까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들이 예수를 찾아나섰던 이야기(마가 3:31)를 보아도 짐작이 된다. 그러나 이렇던 야고보가 일단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부터는 뜨거운 신앙의 소유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누구보다도 끈기 있게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전설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초대교회에서는 야고보의 별명을 낙타 무릎이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그가 어찌나 열심히 기도를 하였던지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입관을 하려니까 오랜 세월 동안의 기도 때문에 그의 무릎이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마치 낙타의 무릎처럼 굽어 있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기도자로 일생을 마친 야고보가 기도를 하라고 한 데에는 그만큼 깊은 뜻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기도는 과연 언제 어디서 생각하든지 간에 크리스천에게 주어진 지상의 의무이며 최고의 특권이다. 왜냐하면 기도는 곧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기도를 통해서 어떤 응답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바로 이와 같은 관점에서 풀이되어야 할 줄 안다.

     

    야고보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권면하면서 믿음으로 간구하는 기도는 많은 사람을 구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때 믿음으로라는 표현이 결코 예삿말로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히 병이 낫는 기적만을 바라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사람들까지도 살리셨지만, 한 번도 마술사가 기적을 팔아먹듯이 기적을 행하신 일은 없으셨다. 그는 항상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뜨거운 사랑과 깊은 동정심(compassion)으로 병자를 껴안으시고 어루만지시면서 고치셨다. 그러고 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오늘날 자신들이 병을 고친다고 떠들어대며 선전하는 사람들과는 얼마나 다르신가!). 바로 이런 예수의 마음과 그의 뜻과 그의 사랑을 이어받는 것이 믿음이요, 예수의 모습을 재현시키는 노력과 삶이 곧 믿음이다.

     

    이런 믿음을 지닌 간구라야 남을 구원한다. 예수의 마음을 지니고 간구하는 기도를 드릴 때 주님은 죄를 용서하신다고 하였다. 그러나 믿음으로 간구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비록 믿음으로 간구한다 할지라도 마음 속으로 조건을 한 가지 생각해야 한다. 내가 기도만 하면 병이 낫는다!”하고 크게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 하나님의 뜻이라면!”하고 겸손히 내어 맡겨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기도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병이 낫는 것은 그를 위해 좋은 일이지, 그것으로 자신의 이름을 파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무슨 노력을 하든지 간에 그것을 남을 살리고 구원하는 일이면 그것으로 끝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병을 고쳐 주시고는 늘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시고 다만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도록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남을 구원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그 심령을 병들게 하고 타락시키며 끝내 믿음을 변질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진정한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가 아니라, 교만한 생각에서 나오는 기도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병을 고치는 것처럼 착각하고 (말로는 성령의 능력을 내세우지만)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는 남을 구원하지 못한다. 일시적으로 육신의 병을 고친다고 해서 그것만 가지고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다고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신유의 은사를 내세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거나 선전하는 것은 성서적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비기독교적이며, 예수를 믿고 세례는 받았으나 주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생각을 하며 살았던 마술쟁이 시몬(사도행전 8:9-24)과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간구하는 기도는 당연히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 하면 낫게 될 것이라고 야고보는 말씀하신다. 서로를 위하여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믿음으로 서로를 아끼며 섬기며 돕는 삶을 의미한다. 서로 죄를 고백하라는 것은 참된 친교를 가질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라는 뜻이다. 서로 잘못을 인정하는 것도 쉽지는 않으나, 주님 앞에서 서로 죄를 고백하고 나면 얼마나 마음이 후련하고 맑고 깨끗해질까를 생각해 보라. 서로의 고백은 서로 사랑하게 만든다. 서로 죄를 고백하고 나면 서로를 통칭하게 되고, 이것이 더 발전해서 공감(empathy)를 갖게 하며, 이것이 결국은 예수께서 병자나 약하고 불쌍한 사람에게 가지셨던 뜨거운 동정심(compassion)으로 나타난다.

     

    위에서 말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이 곧 의인이요, 그런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의인의 간구는 예수의 마음을 지닌 믿음과 성실성의 바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성실성과 자비심은 그 뿌리가 같다. 이와 같은 성실성과 자비심 그리고 믿음을 바탕으로 간구하는 사람은 결코 남의 일이라고 해서 소홀히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을 위해 기도할 때 혼신의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 간구하다.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는 마음과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심정으로 간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런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들어주시는 열정적인 기도는 설령 미움이 있었다 해도 그것이 사랑으로 바뀌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불의한 사람의 기도라고 할지라도 그가 남을 사랑하지 않은 죄를 회개할 때에는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한다. 엘리야처럼 뜨겁게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야고보도 지적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이 특별히 잘 들어주시는 사람의 기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엘리야도 우리와 같은 본성을 지닌 인간이었지만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하자 비가 안 오고 비가 내리기를 기도하니까 비가 다시 왔던 옛날의 사건을 들어 알 수 있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 그야말로 초인간적인 성자(聖者)가 따로 있어서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잘 들어 주시고 평범한 사람의 기도는 차별해서 들으시는 것이 아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기도를 할 때 진정한 믿음으로 간구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것이요, 또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인이냐 아니냐 하는 데서 그 차이가 생긴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믿음으로 간구할 때 진정으로 서로를 위하여 간구하여, 남을 위하여 성실하게 기도하느냐 하는 데서 차이가 생긴다는 말이다.

     

    엘리야도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진 인간이었다고 야고보가 하신 말씀에는 심오한 진리가 담겨진다.

     

    첫째로, 그것은 내가 남을 위해 기도할 때 내가 초인적인 성자도, 그야말로 산을 옮길 만한 능력을 지닌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만큼은 나도 남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는 삶이란 내가 남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요,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라도 믿음으로 간구하는 기도를 할 수 있으며, 이런 믿음의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들이다.

     

    둘째로, 그것은 하나님이 자연적인 영역 안에서 기도에 대한 응답을 하신다는 뜻이다. 기도를 통하여 초자연적인 또는 신비한 응답을 하시는 경우도 있으나,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특별한 그리고 예외적인 현상이며, 오직 자연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보고 믿게 하시려는 더 큰 뜻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병을 고치는 은사를 받은 특별한 사람의 시도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하여 믿음으로 간구하는 보통 사람들의 기도가 사실은 더욱 더 중요한 것이다. 특히 그것이 서로를 위하여 믿음으로 간구할 때 그런 기도는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기도는 늘 변한다. 특히 자신만을 위해 간구하던 기도가 남을 위해 그리고 서로를 위하여 간구하는 기도로 변한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간구하는 기도, 사실 이런 것은 기도가 아니라 자신의 고집과 집착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런 것이 하나님의 뜻에다 자신을 굴복시키며 전인격적으로 내어맡기는 기도로 변한다. 그래서 나 아닌 너를 위하여 기도하며,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라면하는 마음을 가지고 간구하는 기도로 바뀐다.

     

    이처럼 기도가 변할 때 바로 그런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믿음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삶을 구원(救援)으로 변화시키시며, 이기적인 행동을 함께 사는 사귐의 행동으로 변화시키신다. 믿음으로 간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며, 그런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정말 자유를 얻는다.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은 함께 산다!”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간구하며 서로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은 믿음 가운데서 함께 사는 사람들이 된다!” 결국 이웃과 함께 기도하는 사람은 이웃과 함께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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